천사

렘브란트 판 레인, "성 마태오와 천사"

by 룡하

(자화상을 보고 쓴 시입니다. 시와 자화상을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천사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참여해 불사가 된 연금술사처럼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들이

금발 머리의 천사가 되어 찾아왔네


천사의 날개 깃털을 뽑아서 만든 펜으로

천사가 귓속에 속삭이는 음성을 쓴 성서


신이 존재하는 세계인 천국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역할의 천사가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기에

성서도 인간이 것이라네



성 마태오와 천사,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 1661년 작, 96×81㎝


네덜란드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라 일컬어지는 렘브란트는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 아주 작은 부분만 비춰지는 약한 빛 아래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감정과 어떤 순간의 강한 인상을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그림도 바로 그런 작가의 특성이 잘 드러난, 다시 말해서 등장하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읽으려면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크리스트교의 신약성서 중 마태복음을 썼다고 알려진 성인 마태오가 오늘 그림의 주인공입니다.


“크리스트교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마태오는 그의 성서를, 그를 찾아와 귓속에 가까이 속삭이는 천사의 음성을 들어가며 썼다고 전해진다. 그뿐 아니라 마태오는 천사의 날개 깃털을 뽑아서 펜으로 사용했단다. 이 에피소드는 화가들에게 자주 사랑받는 그림의 주제였다. 이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어둠 속에서 내밀하고 섬세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성서도 인간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인 셈이죠. 어떤 메신저가 곁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준다는 이야기는 모든 종교에서 자주 언급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어두워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림이 렘브란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발걸음을 멈춰 찬찬히 쳐다보면 얼굴 속에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복음사가의 얼굴은 늙고 주름이 가득하며 수염과 머리카락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의 펜을 쥔 오른손도 자신의 세월이 겪어 온 흔적을 보이면서 무겁고 진중한 성격임을 눈빛으로 드러낸다. 마태오 성인의 얼굴은 어쩌면 렘브란트 자신의 표현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화가 말년의 자화상 중에 하나라 부를 수 있다.”


초상화와 소박한 배경들이 어우러진 렘브란트의 그림들은 네덜란드 독립 초기의 역사가 배경이 돼 생겨난 그림들입니다. 하지만 그의 후반기 작품들에는 단순히 네덜란드 역사만 반영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 암스테르담 최고의 화가로 대접받고 가장 부유한 층에서 영화를 맛보던 렘브란트는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가족을 잃고 외로움과 고통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실패 속에서 진정으로 마주하게 된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이 오늘날까지 정말로 빛나는 걸작으로 이야기 듣는 그의 자화상들입니다. 그 붓이 보여주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인생의 쓰디쓴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비록 종교화의 형식을 띠고 있긴 하지만, 이 속에서 자화상을 읽어내는 미술사가들 모두 그러한 렘브란트의 환경과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의 뒤편으로 젊음을 대표하는 것 같은 생기 어린 금발 머리의 천사가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다. 아마도 이 천사의 모델은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였을 것이다.”


모델로 추정되는, 렘브란트가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들 티투스도 아버지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렘브란트는 그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홀로 외로이 아들이 떠난 다음 해에 생을 마치게 되죠. 렘브란트의 말년에 그가 남긴 삶이 전해주는 고통과 삶에 저항하는 용기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마태오가 최선을 다해 기록해 놓은 글자만큼이나 렘브란트의 붓은 그의 인생을 기록해 남겨 준 걸작이라고 해도 그 안타까움과 왠지 미안함이 덜어지진 않습니다.


출처 : 안현배,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의 ‘성 마태오와 천사’", 스포츠경향, 2016.02.01, https://sports.khan.co.kr/article/201602011633213


불교칼럼니스트 방경일은 그 이유를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때문으로 분석했다. 기독교에서는 천사가 그들의 신이 주관하는 세계인 천국에 영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생명체가 사후 하늘나라에 태어나도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아미타불이 세운 극락정토에 태어날 것을 권한다. 때문에 야마천의 심부름꾼인 천사가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출처 : 심정섭, "불교용어 천사·장로가 기독교로 간 까닭?", 법보신문, 2012.09.05,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72263


서양의 연금술이 고대 그리스 과학에 비하여 가지는 독창적 부분은 <물질의 복합적이고 극적인 생명>이라는 개념이다. 물질의 극적인 생명에 관한 체험은 그리스와 동양의 비의를 앎으로써 가능해진다고 가정했고, 그 비의에 접근하기 위한 통과의례의 본질에 대하여 숙고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참여하는 데 있다. 이 통과의례적 죽음과 재생의 체험에 의해 연금술사는 존재론적 체제를 바꾸게 되어 ‘불사의 존재’가 된다.7)


7) 미르치아 엘리아데, 『대장장이와 연금술사』, 이재실 옮김, 문학동네, 1999, 153쪽.


출처 : 송덕호 (2016). 김동리와 발자크의 소설에 나타난 죽음과 재생의 연금술. 세계문학비교연구, 57, 23 - 43.

이전 08화무정부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