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천재
한편 클라우제비츠는 역사적으로 전쟁 현상의 관찰을 통해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비범한 군사적 성취를 이룬 인물들의 공통 특성인 천재성을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나폴레옹 전쟁의 초기 전역에서 나타난 나폴레옹의 독특한 군대 운용에 자극을 받았다. 또한 유럽의 다양한 전쟁 역사에 대한 관찰을 통해 최초로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을 군사적인 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인물로 평가하였다.29)
29)위의 책,p.384
출처 : 임익순. (2016).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군사적 천재’의 의미. 군사, 99, 323-370.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을 군사적인 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인물로 평가하였다.
◇나폴레옹의 치밀한 병참 작전
나폴레옹은 그랑아르메의 행군에 대해 세심하게 계획하고 치밀하게 실행했다. 그에게 병참은 군 최고사령관이 알 필요 없는 하찮은 일이 아니라 가장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우선 개별적 작전 단위인 군단의 병력을 약 2만5,000명으로 정했다. 이는 유럽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규모였다. 또한 8개의 군단이 행군할 경로와 획득할 물량을 따로따로 지정해줬다. 특정 지역에서의 과도한 징발을 예방함과 동시에 길이 붐벼서 행군 속도가 느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으로 너무 호의적인 지역을 오래 지나는 일도 조심해야 했다. 안배에 실패하면 군단 전체가 술에 취해버릴 수 있었다.
9월25일, 약 한 달 못 미쳐 프랑스 횡단을 마친 그랑아르메는 라인강을 넘어 독일 영토로 진격을 개시했다. 오스트리아군의 예상보다 한참 빠른 시점이었다. 대공 페르디난트 카를 조제프와 병참사령관 카를 마크가 지휘하는 독일 방면 오스트리아군은 7만2,000명이었다. 마크는 뮌헨에서 서쪽으로 약 120㎞ 떨어진 울름을 방어의 요충지로 정했다. 조아생 뮈라가 지휘하는 제일 남쪽의 기병군단이 시선을 끄는 사이 그랑아르메 6개 군단은 북쪽으로 크게 우회 기동했다. 10월6일 울름 동북쪽의 도나우뵈르트에 3개 군단이 출몰하자 마크는 뒤늦게 반격에 나섰지만 이미 두 배 이상 병력의 그랑아르메에게 포위된 뒤였다. 10월20일까지 마크를 포함한 6만 명의 오스트리아군이 항복해 포로가 되었다. 남다른 기동력으로써 적 부대를 각개 섬멸하는 그랑아르메의 전술은 이후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을 가져왔다.
출처 : 권오상, "[또 다른 시선, 워코노미] 17만 대군 800km 원정 승리, 나폴레옹의 위대함은 군 식량 조달 해결", 한국일보, 2019.07.1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7111063390810
첫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철학 25화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편에서 천도를 지키기 위해 병을 사용함과 동시에 와비차로 문무양도를 추구하며 사리일치의 수행을 통해 금강역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군사적 천재인 주인공에 몰입하여 소설을 쓰고자 한다고 적었다.
나폴레옹이 군사적인 면에서 발휘한 천재성(예 : 나폴레옹의 치밀한 병참 작전)을 참고하여 소설을 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