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등장한 나폴레옹은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출처 : 김정한, "나폴레옹 제국의 탄생과 유럽을 뒤흔든 야망 [역사&오늘]", 뉴스1, 2024.12.02, https://www.news1.kr/life-culture/general-cultural/5617076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에 비해, 유럽에서는 황제 칭호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계승자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 최강대국들이 로마제국 계승권을 내세우면서 패권을 행사한 데 따른 전통이었다.
동로마제국·서로마제국·프랑크왕국·신성로마제국 군주가 황제 칭호를 사용한 것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로마제국의 법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계승자가 황제 칭호를 사용하고 여타 국가들은 그 계승자를 중심으로 형식상으로나마 통합되는 것이 유럽의 오랜 전통이었다.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로마제국의 기억은 이처럼 강력한 것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로마제국의 후예임을 자처하지 않고는 황제가 될 수 없었던 유럽. 이런 유럽의 전통을 일거에 무너뜨린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로마제국의 정통성을 무시한 상태에서 황제 자리에 오른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출처 : 김종성, "'닥치고, 황제' 이 남자가 위대한 이유", 오마이뉴스, 2012.02.08,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4076
유럽에서 황제 칭호는 로마제국의 계승자나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폴레옹은 로마제국의 정통성을 무시한 상태에서 황제 자리에 오른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이 문장은 잉글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헨리 4세’에서 유래된 말이다.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누리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출처 : 유재혁, "[2020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대상] 왕관의 무게, 리더의 자격", 한대신문, 2020.11.30, https://www.hy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653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누리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된 후에 유럽의 질서는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지만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은 실로 지대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나폴레옹 통치의 영향은 그의 지배하에 있던 유럽 전역에 뻗쳤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모든 그의 업적들은 전쟁에서의 많은 승리와, 그리고 혁명의 혼란과 무질서를 타파하고 안정을 되찾은 그의 과단성과, 그리고 통령으로서, 혹은 황제로서, 보여준 그의 비상한 정신력과 의지,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위대한 인간의 모습은 괴테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보기 드문 천재로 혹은 어떤 초인적인 인간으로 보이게 하였다.
출처 : 구정철. (2005). 나폴레옹, 괴테의 황제. 괴테연구, 17, 195-215.
황제로서 나폴레옹은 끊임없이 노력했다.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 2화 위대한 개츠비 편에서 인문학에 대한 사랑을 미래에 할 사업에 반영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인문학에 대한 사랑을 책임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