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는 길 위의 흙과 돌은 어떤 여정을 거쳐 여기에 있을까요?
독창적 우주론 펼친 ‘현대 철학의 거장’
이른바 ‘과정 철학’이라고 부르는 화이트헤드 철학은 ‘고정 불변하는 실재(reality)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철학적 개념(또는 안목)만으로 이해되는 우주는 진정한 우주가 아니다’라는 그 자신의 독특한 우주론을 요체로 한다.
과학적 진보가 눈부셨던 20세기에 주류 철학자들은 세계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인간 지식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저명한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이기도 했던 화이트헤드는 이같은 주류 철학에 맞서 ‘과학의 성과’까지 자신의 철학 체계에 끌어들여 새로운 우주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 ‘파악(prehension)’‘생성(becoming)’ ‘자기 초월체(superjection)’ 등 그의 저작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난해한 개념들이다. 화이트헤드는 바로 이같은 발명품을 동원해 ‘존재의 실상은 활동하는 동안에만 있고, 활동이 끝나면 소멸한다’는 ‘생성론’을 주장했다.
출처 : 박성준, "[학술]21세기 밝혀줄 화이트헤드 ‘과정 철학’", 시사저널, 1999.07.29,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9358
화이트헤드 철학은 과정철학으로 분류되지만 그는 자신의 철학을 “유기체의 철학”으로 명명했다. 그의 주저, 과정과 실재에 나타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존재의 본성을 구명하는 존재론과 우주내의 존재들 상호관계를 구명하는 우주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우주론이 유기체 철학의 특징을 잘 드러낸 반면에 그의 존재론은 과정철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이 논문에서 그의 과정철학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그의 존재론, 즉 세계를 구성하는 궁극적 실재인 현실적 존재자와 그 존재자의 작용 과정의 확정성을 정하는 확정인자로서의 영원한 대상을 과정과 변화와 관련시켜 고찰한다.현실적 존재자는 존재하는 바대로 존재하는 불변적인 것으로서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과정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현실적 존재자의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특징은 불변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두 가지 의미, 즉 합생으로서 내적 변화와 변이로서 타자와 관계되는 상태의 변화이다. 변화는 생성과 동일하지 않다. 한 존재자의 생성은 그 존재자의 소멸이다. 이와 같은 존재자들의 영속적 소멸은 대상적으로 불멸한다.
출처 : 정연홍. (2006). 화이트헤드철학에서의 과정과 변화. 동서철학연구, 41, 377-390.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process philosophy), 일명 ‘유기체 철학’(the philosophy of organism)은 불교계 지성들 사이에서는 그리 낯선 테제는 아니다. 화이트헤드는 우주 자연의 배후에 어떤 ‘실체’가 있다고 보지 않고, 우주 자연을 ‘현실적 존재’(actualentity)라는 우주 자연의 최종 구성단위가 구체화되는 끊임없는 과정, 곧 과정의 흐름이라고 보았다.
이 현실적 존재는 이 흐름 속에서 다른 것과 맺게 되는 유기적 관계에 의해 구체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생각이었다. 흐름을 중심으로 보면 과정이고, 관계를 중심으로 보면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철학을 과정철학이라고도 하고 유기체철학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동양사상 가운데 특히 불교의 ‘인연생멸론’과 흡사한 발상으로 일찍이 불교계 지성들의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조금 더 살펴보자.
존재의 세계는 이성의 언어로 담아 낼 수 없다. 그렇지만 사변의 모험을 시도할 책무가 있다. 그럴 때 인류문명을 창조적으로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어쩌면 철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의무이자 소명일지도 모른다.
두루 알다시피 실재를 합리화하는데 철학의 과제가 있었다. 철학이 신비마저도 합리화해야 한다는 것이 철학자들의 고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실재 기술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다양한 이해 방식들을 조화시킬 토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정통적인 형이상학의 과제도 이런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이트헤드는 가능한 한 전통의 범주나 자연 언어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범주들을 새로이 구상하며, 인간의 다양한 경험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실재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림의 출발점을 인간에게 직접 주어지는 실재,곧 '경험 행위 그 자체'에서 발견한다. / 모든 존재자들은 타자와 교섭하는 가운데 자기를 구성해 가는 과정적 사건으로 존립한다.”
‘존재의 사건’이나 ‘인식의 사건’이 모두 현실적 존재의 자기구성에 속하는 경험의 과정으로 기술된다는 것이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핵심이다.
과정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정태적인 것을 거부한다. 현실적 존재는 생성과정으로 존립하며, 과정을 종결하면 독자적으로 지속할 수 없고 새로운 생성 주체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자기동일성을 가지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현실세계는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과정철학(프로세스철학)’이라고 칭한다.
출처 : 이학종, "화이트헤드와 불교, 무엇이 같고 다를까?", 미디어붓다, 2015.10.01, http://www.mediabuddha.net/news/view.php?number=16488
우리가 무심코 밟는 작은 돌멩이는 수천만 년 동안
강과 산을 흘러온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발밑의 흙 한 줌은 오래된 생명체의
퇴적과 분해로 이루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
내 발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지구의 긴 역사 위를 걷는 행위입니다.
화이트헤드, "과정"
화이트헤드(Whitehead)는 "현실적 존재는 생성과정으로 존립하며, 과정을 종결하면 독자적으로 지속할 수 없고 새로운 생성 주체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현실세계는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장입니다.
돌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끝없는 시간의 과정이 응고된 형태입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돌멩이나 흙이
있는 길을 걸어 보세요.
그 안에는 수천만 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 짧은 접촉이 당신을
지구 시간과 연결시켜 줄 것입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