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연을 설명할 때 쓰는 상징은 어떤 의미를 만들까요?
그렇다면 리쾨르가 말하는 상징은 어떤 의미로 쓰이며, 상징을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뜻을 갖는가? 리쾨르는 우선 상징을 언어적 차원에서 겹뜻의 기호, 즉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낱말로 정의한다. “어떤 언어 표현이 겹뜻 또는 다중의미 때문에 해석되어야 할 곳, 바로 거기에 상징이 있다.”8) 예컨대 불은 열기, 정열, 빛, 정화, 소멸, 그리고 때로는 성령 등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여러 가지 뜻이 있는 곳에 해석이 있고, 그 여러 가지 뜻은 해석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맥락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상징은 의미가 없거나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갖기 때문에 구조나 맥락에 따라 어느 정도 제한이 가해져야만 한다. 거꾸로 상징 해석을 위해서는 구조 차원에서 상징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리쾨르는 이를 일차 의미와 이차 의미 사이의 관계로 설명한다. “직접적이고 일차적이며 문자적인 의미가 넘쳐흘러 간접적이고 이차적이며 비유적인 또 다른 의미를 가리키는 모든 의미작용 구조를 상징이라 부른다. 이때 이차 의미는 반드시 일차 의미를 거쳐야만 붙잡을 수있다.”9) 겹뜻 표현의 경계를 정하고, 일차 의미를 통해 이차 의미를 가려내는 것이 해석이며, 그러한 이차 의미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상징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처럼 고대의 주석학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그 공통 관심사는 이중의미 또는 다중의미를 지닌 텍스트, 다시 말해서 숨기면서 드러내는 표현의 해석이며, 언어적 차원에서의 분석은 드러냄과 숨김의 의미론 안에서 이루어진다. “해석이란 생각하는 일인데, 그것은 겉에 드러난 의미에서 숨겨진 의미를 풀어내는 작업이고, 문자 의미 속에 함축된 의미층위들을 펼치는 작업이다.”[CI, p. 16]
8) Paul Ricoeur, De l'interprétation - Essai sur Freud, Seuil, 1965, p. 26. [이하 ‘DI’로 약칭]
9) Paul Ricoeur, Le Conflit des interprétations - essai d'herméneutique, Seuil, 1969, p. 16. [이하 ‘CI’로 약칭]
출처 : 김한식. (2018). 상징과 은유의 해석에 대하여 - 폴 리쾨르의 해석학을 중심으로. 프랑스어문교육, 62, 175-214.
리쾨르는 철학담론에서 두 가지 유형의 은유를 구분하는데, 하나는 의미론적 결핍 상태에 있는 일상 언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낱말을 확장해서 사용하는 경우, 예컨대 ‘이성의 빛’이라는 은유가 그렇다. 리쾨르에게 그러한 은유는 철학적 담론 형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어휘와 관련된 언어 현상이기에 시적인 은유, 즉 ‘만들어낸 은유métaphore d’invention’와는 차원이 다르다. 만들어낸 은유는 담론 차원에서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 사이의 긴장에 근거하여 ‘의미론적 혁신’을 낳기 때문에 단순한 수사학적 장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 물론 철학적 개념이 죽은 은유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은유의 가능성과 개념의 자율성을 간과해서도 안 되고, 철학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은유의 사용을 문학에서의 시짓기와 혼동해서도 안 된다.24)
24) “헤겔이 Wahrnehmung(지각, 인지)을 진실로-간주함prendre-vrai으로, 하이데거가 a-lêtheia(진리)를 ‘비은폐’로 해석할 때 철학자는 의미를 창조하고, 그런 식으로 살아있는 은유와 같은 어떤 것을 생산한다.”([살아있는], pp.370-371)
출처 : 김한식. (2019). 살아있는 은유 또는 은유의 물러남 - 리쾨르와 데리다의 은유 논쟁. 불어불문학연구, 119, 43-80.
리쾨르의 해석학은 기본적으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의 구도를 취하지만, 의심의 해석학을 또 하나의 축으로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해석 행위에는, 존재론적 해석학의 계시와 열어 밝힘과 의존과 귀속이 있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의심의 방법을 통해 억압하는 구조를 없애는 비판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다. 해석학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직접하지는 않지만, 밖에서 일어난 이데올로기 비판이 해석의 과정 중에 중요한 단계로 수용될 수 있고 수용되어야 함을 리쾨르는 밝혔다. 신학이나 신앙은 성서라고 하는 은유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신앙은 성서 앞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자기 이해다. 그러므로 리쾨르의 은유 이론에 따르면, 기독교의 신앙은 언제나 텍스트가 제안하는 새로운 세상 앞에서 자기의 편견을 버리고 외부에서 밝혀진 구조 악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신앙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수용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 때문에, 리쾨르의 해석학은 해방신학이나 여성 신학 같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중시하는 신학에 중요한 영감을 준다. 여성 신학의 경우, 가부장제 비판만을 위해서는 리쾨르의 해석학이 필요 없지만, 신앙의 영성을 중시하면서 비판적 신학을 마련하고자 할 때는 그의 해석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쉬나이더스는 통합의 해석학을 위해, 그리고 맥페이그는 새로운 모델을 통한 여성 해방의 신학을 마련하기 위해 리쾨르의 해석학을 이론적 기반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앤더슨은 로고스 중심의 철학보다는 신화의 은유 세계에서 여성의 새로운 역할을 찾기 위해 리쾨르 이론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은 몇 가지 예에 불과하지만, 성서를 버리지 않고 여성 신학을 할 때 유용할 것이다. 신앙 경험으로부터 해방의 힘을 끌어내고자 하는 신학에 리쾨르의 해석학은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제공할 것이다.
출처 : 양명수 (2010). 폴 리쾨르의 해석학과 여성신학 . 신학사상, 149, 163 - 208. -> 3)4)5) 넣기
우리는 종종 "산은 어머니 같다",
"강은 생명의 혈관이다"라고 말합니다.
상징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자연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하게 합니다.
상징은 자연을 추상적인 배경이 아니라,
친밀한 존재로 바꿔 줍니다.
폴 리쾨르, "상징"
폴 리쾨르는 상징을 "언어적 차원에서 겹뜻의 기호, 즉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낱말"이라고 했습니다.
불은 열기, 정열, 빛, 정화, 소멸, 성령 등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자연을 어떻게 비유하느냐에 따라,
자연은 단순한 자원이 될 수도 있고,
살아 있는 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자연을 하나 골라 상징을 붙여 보세요.
예: “오늘의 하늘은 내 마음의 거울이다.”
이 작은 놀이가 자연을 보는 눈을 바꾸고,
일상 속에 시적 상상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렇듯 상징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힙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