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 "집단적 무의식"

내가 꾸는 꿈과 상상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by 룡하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방법에 따라 수행되었다. (1) 老子의 ‘道’와 칼 융(C. G. Jung)의 ‘자기’(Self)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초월적 구조다. 연구자는 노자의 ‘無’ 개념이 융의 ‘무의식’ 개념에 대응될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에게 ‘道’는 ‘無’의 원리적 차원이다. 노자가 볼 때 ‘道’의 실재는 인식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내면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이 도를 잘 인식하여 현실에서 쓰임새가 있도록 해야만 한다. 이 경지는 여러 원형 상징들에 의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노자가 언급한 원형의 실례로는 谷神⋅食母⋅樸⋅嬰兒⋅轂 등이 있다. 이는 융이 말한 원형 상징인 어린이⋅老賢人⋅어머니인 大地⋅자연계의 대상과 수레바퀴 등에 대응된다. 그리고 노자가 말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는 융의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라는 개념과 일맥이 상통한다. 융에 따르면 모든 정신현상은 서로 상반된 영역이 갈등과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다.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 남성성과 여성성,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정신과 신체, 내향성과 외향성 등 무수한 상반된 영역 사이의 갈등과 통합 속에서 살아간다. 노자에게 있어서도 無欲과 有欲, 道와 도를 잃은 것, 선함과 불선함, 남성성과 여성성, 화와 복, 영혼과 육체 등, 상반된 영역간의 대립과 종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노자가 말한 ‘和光同塵’은 곧 ‘자기’ 실현의 기본자세다. 이 ‘화광동진’에는 상반된 범주의 공존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간섭현상에 의해 노자의 ‘도’와 융의 ‘자기’는 정신 내에서 대극의 합일을 이루어낸다. (2) 무의식으로의 ‘물러남’은 새로운 원천을 불러오는 태도다. 아울러 다시금 생기를 되찾기 위한 ‘치유’를 통한 재생이다. 노자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道의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인류사에서 보이는 수많은 전설이나 신화 또한 이러한 원형적 세계로의 물러남이 잘 표현되어 있다. 융이 말한 ‘자기’의 발견과 노자의 ‘復歸’는 같은 맥락을 지닌다. 융에 의하면 ‘자기’는 다른 모든 원형들을 아우르는 중심적인 원형이다. 이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성’이다. 노자의 ‘道’ 또한 융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중심적 원형이다. 노자는 ‘有無相生’을 언급하면서, 현실세계와 그 현실을 낳게 한 근원적 세계를 아울러 중시하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 자신’이 되게끔 하는 능력이 바로 자기원형의 기능이다. 이는 노자의 ‘自然’이다. (3) 자기 자신의 원형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면 이기적 욕망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의 원형성과 교류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인간형은 끊임없이 ‘자기 변형적’이 된다. 연구자는 이 연구에서 노자 사상과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접목하여 새로운 방법론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이 작업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스스로의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성찰해 보았다.


출처 : 양승권 (2013).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동양철학연구, 76, 157 - 191.


‘집단적 무의식론과 원형론’에서 원형의 심리학적 개념을 모성 원형, 어린이 원형, 아니마(빛, 자율성의 집합체) 개념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으며, 민담과 신화에 나타난 정신 현상에 관해서는 심혼의 상징적 표현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본다. ‘초월적 기능’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새롭게 확장된 개념으로 꿈의 해석을 다루고 있다. ‘동시성’ 현상에 관해 융은 인과론적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상의 일치 즉 투시, 텔레파시 등 정신적‧물리적 현상의 존재와 시‧공간을 상대화할 수 있는 무의식의 경험 원리로서 접근하려고 하였다.

무의식의 개념은 프로이트에 의해 억압되거나 잊혀진 내용이 나타나는 경우로 국한되어 개인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 그러나 융은 의식된 개인의 정신과는 달리 우리의 의식 이외에 집단적인 다른 정신체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 개인적 무의식은 개인의 경험이나 습득에 의해서만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더 깊은 정신의 토대 위에 있다는 것이다. 융은 그것을 ‘집단적 무의식’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며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보편적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집단적 무의식은 개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되는 것으로, 개인적인 무의식의 내용은 주로 정신생활 중에서 개인의 정감이 강조된 친숙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으나 집단적 무의식은 원형(原型)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부연하여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인 ‘원형’은 플라톤의 에이도스(형상, 표상)의 다른 표현이며, 고대로부터 존재해온 보편적 상(像) 곧 원초적 유형을 말한다. 아울러 ‘기본적 또는 원초적 사고’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또한, 이 원형은 원시적 세계관의 여러 상징적 형태를 포함하는 ‘집단 표상’과도 그 뜻을 같이한다. 고대 원시 종족의 규범은 특수하게 변화된 형태의 원형을 다루고 있고, 원시 종족에게 집단 표상은 무의식의 내용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르침이며 공식적으로 변한 것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원형의 다른 형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고대 원시의 신화나 민담 그리고 꿈이다. 원시인의 자연 인식은 근본적으로 무의식적 심적 과정의 언어이다. 그들은 깊은 주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화와 심혼적인 것을 연결했음에 틀림없다. 원시적 가르침의 진실을 표방한 세계 종교들은 비밀스러운 계시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심혼의 비밀을 장엄한 상들로 표현했다. 그 상이 숭고할수록, 광대하면 할수록 개인적 경험과는 먼 집단적 무의식으로서의 원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이 지성으로 엄청난 것을 이룩해가는 사이에 원형의 집은 허물어져 버렸다. 결국, 우리는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의 지혜를 발굴해내어, 가장 가치 있고 훌륭한 모든 것들이 이미 오래전에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융은 인간의 의식이 언제나 원형적 본능의 토대에서 벗어나게 됨에 따라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대극으로 빠져들어 감으로써 무의식을 의식에 통합할 필요성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수단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한 자인은 정직함, 진리를 가져온다. 그럼으로써 집단적 무의식의 보상적 반응에 대한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전에는 언어로 표현하지 않았던 생각을 인지하거나 무의식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을 갖는다면 인간의 더 깊은 본성에 깃들어 있는 내면의 힘은 깨어나게 될 것이다.


출처 : 이지혜, "[이달의 책] 원형과 무의식 - 집단적 무의식에 관한 소고", 부안독립신문, 2021.02.05, https://www.ibua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00


본 논문은 융의 ‘집단무의식’ 이론 중 ‘원형’ 문제의 실질을 파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방면의 논의를 통하여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하나, ‘원형’과 ‘원시 이미지’ 두 개념 간의 구분. 둘, ‘원형’과 ‘원형표상’ 간의 관계. 본 논문에서는 그 구체적인 작업으로 우선적으로 ‘원형’과 ‘집단무의식’ 이론의 기본적인 관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 다음으로 융이 ‘원형’과 ‘원시 이미지’의 두 가지 개념을 사용하였던 용례를 통해 ‘원형’의 실질을 밝혀내고, ‘원형’과 ‘원형표상’ 간에 존재하는 경계를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 다음 단계로, ‘원형’이 존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명백히 밝혀내는 동시에 ‘원형’에 내재된 가능성들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방식에 관한 논의를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원형’의 형성, ‘원형표상’의 유전될 수 없는 특성 그리고 ‘원형’과 ‘원형표상’ 상호간에 거스를 수 있는 ‘역성(逆性)’ 등의 구체적인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고찰해보았다. 이를 통해 융의 ‘원형’ 개념에 관한 다양한 시각에서의 심도 있는 해석이 가능해질 수 있다.


출처 : 方圓 (2015). 융의 “집단무의식” 이론 중 “원형”의 문제. 인문과 예술, 2, 157 - 169.



꿈 속에는 종종 바다, 숲, 하늘 같은

자연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무의식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얽힌 기억과 경험이

빚어낸 또 다른 풍경입니다.



칼 융, "집단적 무의식"


칼 융(C.G.Jung)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며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집단적 무의식은 원형(原型)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개인적 무의식은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더 깊은 정신의 토대 위에 있습니다.

숲, 강, 별빛 같은 상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류가 공유하는 심층적 상상력의 근원입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밤 꿈을 기록해 보세요.

그 안에 어떤 자연의 이미지가

등장했는지 적어 보세요.

내 무의식조차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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