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회
저마다,
담을 수 있는 그릇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저기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것을 담았다 싶은 지금,
보이는 건 뿌연 연무 뿐.
다시,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또 얼마만큼의 욕심을 부리며
살아갈까
고단한 여름의 끝자락.
한 번은 괜찮다고 말한다
두 번은 안 된다고
두 번까지는 용서한다고 말한다
세 번은 안 된다고
언제나 반복되는
잘못과 용서 그리고 화해
아주 작은 잔을 준비한다
70mml 잔에 30mml 만 담을 수 있게
희고 두툼한 에스프레소 잔을 준비한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콜롬비아 슈트리모.
과테말라 안티아구.
브라질 산토스는 조금만 넣을까?
이렇게 브랜딩을 하고
강배전으로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만 담자.
이곳에서 저곳까지는
30mml의 에스프레소 처럼
욕심 없이 진한 풍미와 더불어 가고 싶다.
지난 여름을 기억하기 위한
가벼운 온두라스 한잔 정도는 괜찮을 거다.
이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여지껏 그래왔듯
내 삶이 서글퍼질까 두려워
단 한 번도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듯
소박하지만 오랜 풍미가 가득하도록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