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한 사람의 이야기[숨결이 바람 될 때]

[책] 숨결이 바람 될 때

by 별자리작가


같은 동료 외과계 의사이자 생각의 바닥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성숙된 정신세계를 가진 이 사람과 같이 수술을 하면서 얼마나 수술을 잘하는지 보고도 싶고 저녁 늦게 당직실에서 매운 겨자가 듬뿍 뿌려진 샌드위치를 먹으며 세상 얘기를 하고 싶다.
- 이국종 교수 -


열심히 산다는 건 무엇일까? 전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 말이죠. 맞서 싸운다라는 느낌과는 달리 역경이 닥쳐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나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과 절망에도 그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었죠. 큰 병에 걸리거나 인생을 뒤틀리게 하는 역경을 만나게 되면 우린 모든 것이 멈추고 절망에 빠집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데 있어 받아들여야 할 게 너무 많거든요. 사소한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렵고 힘들어지고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죠.


그도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아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갔죠. 그렇게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연명치료를 포기했던 그였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집필해 나갔습니다. 그를 보며 느꼈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이라고.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영화 속 히어로를 동경하는 건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 그런 인문들을 동경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저의 아이 같은 면 때문은 아닐 겁니다. 불우한 이웃들에게 전해지는 기부소식과 겨울이 다가올 때면 들려오는 연탄 나눔 소식 등등 가슴 따뜻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며 그러한 자신의 철학을 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철학가에 가까웠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의사가 되기로 했던 이유가 그것이었죠.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실천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삶과 죽음을 관철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래서 의학을 배웠다는 부분은 그의 오랜 생각들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죠.


작고 사소하지만 위대한 계기를 본 것 같았어요. 이렇듯 자신의 생각과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대단한 사람들의 결심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거죠. 사람들은 그런 거예요.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흰 코트를 걸어놓고 신분증을 떼어냈다. 그런 다음 호출기에서 배터리를 빼고 수술복을 벗은 뒤 오랜 시간 샤워를 했다. 그날 밤늦게 빅토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월요일에 못 나간다고, 어쩌면 다시는 복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수술 일정을 잡지 말라고 부탁했다.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환자가 되어버린 그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호출기를 끄면서 더 이상은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사람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죠. 일상이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보통의 삶에서 일상을 바라는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여러 책과 영상으로 이러한 삶을 보며 '나라면 이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승진과 집값, 대출 등에 집중해 있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외출하기나 산책하기, 걷기나 화장실 가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 온전한 정신의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 속에서 우린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하겠지만 그게 고작 걷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상실감이 클까요.



“그냥 충분히 비극적이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길지 않은 삶에 내가 가진 경험들과 생각 중 나눌 수 있는 게 있는지 생각해 보지만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할 이야기는 많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세상엔 절대적인 진리라는 건 없으니까요.

세상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물론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 환경을 고려할 때 어떤 선택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래라저래라, 저게 옳다 그르다 해선 안돼요. 가르칠 필요가 없는 거죠.

다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일을 경험할 순 없으니 우리의 삶을 전하며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글을 쓰고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는 일인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가? 난 어떤 가치관을 가졌기에 이러는 걸까? 나도 저자처럼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는 건가? 누군가 나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어릴 적부터 안고 왔던 물음이었고, 그때마다 여러 답이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남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유일한 건 '이야기' 하나뿐이었죠. 그래서 글을 쓸 때면 누군가 제 글을 보며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게 전 좋아요.


여러분들에게도 나를 행동하게 하는 가치관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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