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스인 조르바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네요. 왜냐면 전 '고전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나쁜 인식이 있었거든요. 독자로서 좋지 않은 자세죠. 어릴 때 접했던 작품을 힘들게 읽었던 기억 때문인 것 같아요. 책을 억지로 읽었던 기억에 이런 분류의 책을 멀리하게 된 거죠.
추천받거나 하지 않았다면 읽을 계가기 없을 텐데 누가 권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추천받은 책은 아닌 것 같고 우연히 빌렸던 것 같네요. 운명이었나?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있던 입장에서 이 책은 좀 신선했습니다. 어쩌면 화자의 입장에 공감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화자처럼 도덕적, 사회적 관념에 사로잡힌 제게 조르바의 자유롭고 솔직한 모습은 대리만족 같은 즐거움을 주었으니까요. 조르바라는 캐릭터를 받아들이는데 여러 이견이 있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책을 읽고 난 후의 전 약간의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얘야. 7층짜리 하늘도 7층짜리 땅도 하느님을 품기엔 좁단다. 하지만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을 수 있어. 그러니 알렉시스, 조심해라.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
워낙 쉽게 상처받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마음이 상처받는 일을 꺼려합니다.
돌이켜보니 작은 것도 상처가 되는 일상이에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것을 두고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마치 돋보기 마냥 확대시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확대 해석하며 어떤 명분을 만들죠. 그리고 갖춰진 이 명분으로 저 스스로를 상처 입힙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떨어진 화살을 이용해 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처럼요.
반면 타인의 말의 의중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렇게나 하는 말에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말이 그 사람의 하루를 엉망으로 만드는 말이라더라도 개의치 않고 하는 이들. 이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날 선 말들에도 개의치 않죠. 그들은 말을 마음에 두지 않기에 누가 뭐라 하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해석하고 그렇기에 타인의 반응에 무신경하죠.
배려 없는 말이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린 무던해지는 지혜가 필요해요. 사소한 말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그것에 스스로를 상처 줄 필요도 없어요. 그런 행동이 내게 아무런 의미를 남기지 않으니까요.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聖物)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내가 의미 없는 것들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라도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면 그건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린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편이니까요. 물건들도 그러할 거고, 취미도 그중 하나일 겁니다.
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의미를 갖고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 믿음이 필요하도고 생각합니다. 희망과 같은 미래에 대한 기대, 사랑과 우정 같은 관계도, 직장에서 사람들이 갖추는 권위도 마찬가지예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렇잖아요. 존재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저마다 갖는 의미도 다른데 믿지 않는다면 그들의 존재의는 어디 있을까요?
오래된 이가 남긴 유품들만 봐도 알 수 있죠. 제게는 아빠가 남긴 오래된 시계 하나가 있습니다. 값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흐릿한 기억 속의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죠. 고장 난 이 시계는 다른 이들에겐 낡은 골동품에 지나지 않지만 제겐 소중한 유품입니다.
이 시계가 제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이것에 아빠의 흔적이라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이런 특별함은 결국 믿고 행하는 사람들만이 갖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하느님은 굉장한 임금이십니다. 굉장한 임금이시란 게 뭡니까? 용서해 버리는 거지요!
전 용서 못한 사람들을 영원한 유예로 둬요. 그에게 사과받지 못했고, 마주할 일이 없으니까요. 아마 평생을 그렇게 살 가능성이 높지만 아무튼 난 그를 응징할 여유도 없고 그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제게는 절대 용서 못 할 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용서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와 관련된 기억은 전부 유예시켰어요. 모든 선택을 아주 먼 미래로 미뤄버린 거죠.
용서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전 누군가에게 함부로 용서해 달라 말하지도, 용서하라고도 말하지 않아요. 용서란 상처받은 자만이 베풀 수 있는 자비로움이지 상처 준 이의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전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과거 속에서 죄인으로 남았으면 하고 평생을 그렇게 남기려고요.
언젠가 제가 이 사람을 용서하고 편하게 말할 날이 오길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를 평생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철없어 보이겠지만 제겐 이렇게 용서가 어렵습니다.
사실 그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면 전부 옳았다고 하기엔 문제가 많지요. 조르바 같은 사람을 현실에서 내 곁에 둘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곁에 두기 좋은 사람이라 보기 어렵네요. 그는 자유를 논하지만 책임을 외면하는 그는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에게 조르바는 어떤 사람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