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의 재해석
선입견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일에 대한 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선입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답은 ‘내가 고쳐야 할 나쁜 습관’으로 귀결된다. 영원히 고쳐야 할 습관처럼.
하지만 우리가 선입견을 가지게 된 특징도 분명 있다. 또한 그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닐 것이고, 결국엔 그런 습관이 들게 된 건 내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행동 중 이유 없는 것은 없다. 나쁜 습관이든 좋은 습관이든 마찬가지로 내가 뭔가 얻는 게 있으니 행동하는 것이다. 단지 그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따라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니 나쁜 이미지와 달리 그에 상응하는 이익이 있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 객관적인 판단으로 정도를 지키려 한다. 편협한 시선을 경계한다.’고 할 것이다. 나도 뭐 비슷한 답을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평균을 나눠보자면 난 지나치게 ‘중립’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냐면 넌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답답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기 때문이다. 싫다는 말도 잘 안 하고 좋다는 말도 안 하는 것 같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다 보니 내 입장은 항상 모호했다.
이게 선입견이 없는 사람의 단점이다. 사실 선입견이 없으면 모든 것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선입견이 없다는 건 정도와 선을 정해두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선을 두지 않으면 생각만 하다 끝나기 일쑤다.
관상이나 이상형과 같이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있고, 서로가 주고받는 장난의 기준일수도 있다.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이 미뤄지면 난 끝없이 벌어진 일들에 대해 생각만 하다 끝나게 된다. 반대로 정도가 생기면 그 정도에 맞춰 판단하면 된다. 그렇기에 생각이 깊어질 필요가 없고, 따라서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 낭비가 사라지게 된다. 즉 선입견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어떤 일을 하는데 그 시간이 짧아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도 많아졌고, 결정할 것들이 많아졌다. 생각할 시간에 행동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있으니 결코 좋은 행동은 아니다.
결국 선입견이란 건 내가 삶에 있어 결정해야 할 일들에 대한 에너지소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난 요즘 선입견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일이지만 기준이 없으니 자꾸만 머뭇거리다 때를 놓치기 일쑤다. 늦었지만 지금에서라도 내 기준을 세워야겠다는 게 내 의견이다. 물론 선입견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신중함의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선택에 있어 내게 필요한 게 신중함인지 신속함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