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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댄 Dec 07. 2020

언젠가 우리는 이 곳을 떠날 테고

학원에는 도시락 방이 마련되어 있다. 진짜 독립된 방은 아니고 학원 로비 한편에 6인용 책상 10개쯤 둔 공간을 그렇게 부른다. 평소에 그 6인용 판자상은 수강생들의 책이 놓이는 책상이지만 12시부터 2시까지는 음식이 놓이는 식탁으로 변모한다. 밥을 사 먹을 돈이 없거나 건강관리차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왼쪽 벽면에 전자레인지와 정수기도 구비되어 있다. 처음 그곳을 봤을 때 흥미로웠다. 노량진은 이런 곳이구나 싶어서. 나름 학원에서는 수강생 편의를 많이 신경 써주는 듯했다. 비록 로비에서 밥을 먹게 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수업이 있는 날 보통 나는 밥을 나가서 사 먹는다. 도시락 방을 이용할 기회가 없다. 하지만 오늘 점심시간으로 허용된 시간은 겨우 10분이었다. 얼른 먹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던 탓이다. 아침에 먹다 남긴 토스트를 해치울 요량으로 도시락방에 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혼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마주 보는 게 불편한 지 사람들은 지그재그로 앉아있었다. 나는 식은 토스트를 베어 물며 그들을 구경했다.


 도시락 통에 카레라이스와 백김치를 담아 온 여자가 있었다. 안경을 썼던 것 같다. 검은 비닐봉지에서 군고구마를 꺼내 조금씩 베어 물던 긴 생머리의 여자도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김밥을 먹던 남자도 보였다. 사람들은 다양한 외형을 지녔지만 이상하게 한 사람 같았다. 눈이 같았다. 마주 보며 식사하는 무리는 그나마 생기가 돌았지만 대부분의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듯 눈에 힘을 빼고 음식을 씹었다. 초점이 있는 눈으로 밥을 먹는 이를 딱 한 명 보았는데 그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집을 응시하고 있었다.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이 곳은 그들에게 정거장 같은 곳이다. 정거장에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우리는 이 곳을 떠날 테고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퀴즈쇼>를 읽은 곳은 홍대의 한 북카페. 3년 전쯤 사라진 곳이다. 그러니 나는 스무 살, 많아봐야 스물한 살 무렵에 이 책을 만났다. 그때도 이 문장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가상현실 같은 리얼 현실 속에 오니 이제 실감한다. 이건 공감이 아니라 공포의 범주라는 것을. 여기에 오래 있으면 내 눈도 담지 않는 눈이 될 것이다. 아니, 담지 않은 눈만이 이 정거장을 일찍 벗어날 수도 있겠다. 무엇이 먼저인지 생각해보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제각기 일용할 양식을 씹는 사람들 눈에는 내 눈이 어떻게 보일지가 더 궁금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막힌다. 재작년에는 토익 학원을 결제하고 반이나 넘게 빠졌다. 요즘은 학원을 성실히 출석하고 있다. 무려 주 5일이다. 별로 불편하지도 않다. 한 과목 당 수강생은 200명 남짓. 다음 날이 되면 나는 학원 속 얼굴을 열 개도 기억하지 못한다. 학원 속 얼굴들도 나라는 존재를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에 안도한다.



 나는 이미 도시락 방 사람들의 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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