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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댄 Mar 20. 2021

불행하지 않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일한 지 2주가 지났다. 몰아치는 평일이 지나고 맞는 토요일.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며 폭식을 했다. 베이컨 맛 과자 한 봉지, 솔티캐러멜 크림이 든 오레오 한 봉지, 그냥 캐러멜 4개, 편의점 커피, 미니 와인, 민트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중간중간 식사라 할 수 있는 찬거리도 집어 먹었지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적당히 알딸딸한 기분으로 브런치를 켜본다.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 것 같다.


지금 나는 판교 한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아날로그 대표주자 같은 내가 소프트웨어를 파는 사람이 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다’와 ‘이곳은 왜 저럴까’를 오간다. 조용히 있다 와야지 다짐해놓고 공연히 입을 떼서 일감을 물어오는 내가 지겹다. 든든하다.

 

퇴근하고 동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인스타그램을 본다. 혹사한 눈의 눈치가 보여 계속 화면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겨우 15만 원 남짓 들어있는 주식 계좌를 확인하기도. 가방에 마케팅 책을 담아뒀지만 지퍼를 열 힘이 안 난다. 절전모드로 한 시간 반을 길에 묻는다.


어제와 그제는 필라테스 수업이 있었다. 저녁도  먹고 부지런을 떨었다. 모든 스케줄이 끝나고 집에 가는 . 친구와 통화를 하고 싶어 연락처를 정독한다. 선뜻 전화를  사람이 없다. 애인과는  시간 뒤에 통화하자고 말을 맞춘 터다. 단념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어느덧 활짝  목련을 발견한다. 봄은 역시 추운 계절이구나 옷깃을 여민다.


내가 그리던 내 미래와 나는 닮지 않았다. 사실 지나간 시절의 내가 어떤 미래를 그렸나 아득하다.


1년 전에는 공무원이 되는 걸 꿈꿨다. 2년 전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 전에는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다고 짐작했다. 4년 전에는 그냥 행복하고 싶었다. 장래희망으로 적었던 직업들은 생각나는데 내가 어떤 실루엣의 나를 그렸는지는 미궁 속이다.


초등학생 때 문집에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적어낸 글만 뚜렷하다. 어른이 되면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국제변호사가 될 거라고 상상했다. 샐리라는 딸을 낳았다고도 썼다. 만나보고 싶다. 제주도 시골, 학년당 반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에서 재밌는 꿈을 꾸고 있던 나를.


드립백 하나를 꺼내 컵에 걸친다.

불행하지 않지만 허전한 마음에 졸졸 물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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