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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댄 May 23. 2023

선물을 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것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미뤄뒀던 선물을 보낸다.


집들이는 못 가더라도 독립을 축하해주고 싶은 어느 오빠에게 유리컵 세트를 보냈다. 집에서도 불멍을 즐길 수 있는 LED 램프도 후보에 넣었지만 역시 파격보다는 실용이다. 자주 보거나 인사하지도 못하는데 올해에도 어김없이 생일 선물을 보내줬던 어느 동생에게도 립스틱과 아이섀도 세트를 보냈다.


저번에 시댁 식구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는 기름집에서 들기름과 참기름을 사갔다. 요전날 남편과 그 집에서 구입한 들기름으로 막국수를 해 먹었는데 맛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사실 몇 년 전,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가까운 이들에게 생일 선물을 사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지금도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는 돈이 있다는 사실에, 내 것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사실 숫기가 없어 자주 대화에 나서지 못했던 나를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겠거니 생각해 주라는 마음도 담는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더 기쁜 일이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느낀다. 물론 받는 것도 여전히 좋다. 아직 주고받음에 연연하기도 하고. 그래도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선물을 줬는데 상대가 주지 않음에 골몰하기보다는 내게 선뜻 베푼 사람에게 어떻게 더 잘해줄 수 있을지 더 많이 생각한다. 받아야 될 것 못 받았다고 눈을 흘기는 것이 아니라 줘야 할 것을 못 줬을까 걱정하는 것. 고민의 크기가 같을지라도 어떤 고민이 더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자명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줘야 할걸 못 줬을까 양손을 끔뻑거리는 선한 사람들. 따져보면 사실 근 몇 년간 돈이 많아져서 마음이 넓어졌다기보다는 그런 사람들의 넉넉함을 나도 모르게 보고 배웠던 것 같다. 아직 나의 상처를 나누는 건 연습이 필요하지만 - 착해서가 아니라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나약함, 이기적인 본성을 소중한 이들에게 드러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그래도 선물을 나누는 사람까지는 되었다. 선물 같은 성장.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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