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를 거뜬히 들어 올릴 힘
죽음은 삶을 덧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일시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다시 삶의 무게가 묵직해진다. 죽음만큼이나 힘든 것이 삶이라고 산 자만의 착각을 이어간다. 남겨진 자는 그렇게나 이기적이다.
아빠를 보내고 100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2월까지만 해도 낚시를 즐기던 우리 아빠. 아빠를 보내고 삶이 크게 바뀌었다. 책임질 일들이 생겼고 직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평가를 받았다. 작년에 무턱대고 시작한 투자로 인해 감당할 일도 생겼다. 아빠를 보러 가기 위해서는 운전면허를 따야겠다 다짐을 했지만 삶이 겨워 차마 학원을 찾아가지 못했다. 나약함은 때로 이기적이다.
친한 사람들에게도 다 전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근황은 나를 점점 고립시킨다. 하루는 과하게 움직인다. 이겨내 보려고. 처음으로 문학 공모전에 참여했다. 슬로건 공모전에도 슬쩍 문장을 적어 보냈다.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집고 창작의 공간을 만든다.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고민과 연민이 발에 차이지만 춤을 춘다. 마더의 김혜자 배우가 형언할 수 없는 마음 대신 몸을 흔드는 것처럼. 바람 따라. 바람같이. 또 하루는 그저 울면서 보낸다. 그럴 때면 책장에 임시로 꽂아둔 고민과 연민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그래도 울고 나면 그것들을 다시 꽂을 수 있다.
올해 안에 운전면허를 딸 것이다. 자주 보러 가야지 하는 이 마음 희미해지기 전에. 삶의 무게는 지나치지만 그 지나침 거뜬히 들어 올릴 힘을 문장에서 찾아본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발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지탱해 줄 건 내가 우직하게 땋아내는 문장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글을 쓴다. 예지는 글을 잘 쓰니까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네가 옆에서 잘 도와줘야 해. 아빠는 남편에게 그렇게 일렀다. 그래 써야겠다. 그 편이 낫겠다.
남겨진 자는 이렇게나 억척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