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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Dec 07. 2019

아침이 좋은 이유

1시간은 핵인싸가 되자

아직은 깜깜한 밤. 동이 트기 전 자연스레 부스스 일어난다. 개운하게 잤는지 몸은 한없이 생생하고 머릿속은 맑은 물속을 비추어 보듯 또렷해진다. 커피를 즐겨할 줄 모르는 나는 따뜻한 물 한잔을 깊게 마신다. 조금 더 누워 잘까 하고 잠을 다시 청해 보지만 한번 전원이 켜진 생각은 쉽게 잠을 내어주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불을 켜고 베란다로 향했다. 차가운 겨울의 한기에 발이 시려오고 '춥다'를 마음속으로 세 번 외치며 따뜻한 거실로 돌아왔다. 작은 방에 스탠드를 켜고 무작정 노트와 펜을 꺼내본다. 무언가를 적고 쓰고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할지 마구마구 둥실 떠오르고 있다. 하나라도 잊어버리기 싫어 급하게 메모를 한다. 


창밖을 보니 아직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먼 곳의 나무와 집, 사물들이 형체를 보일 듯 말 듯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기억 저편의 어린 시절에도 이른 새벽과 아침을 회상하면 '출발' , '생동감' , '선명함' , '맑은 하루' ,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내가 5살 무렵의 기억에 등장하는 시골집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일찍 일어나셨다. 두 마리뿐인 소밥을 주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잠이 없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어린 아이기 때문일까 나는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맞이하는 게 좋았다. 새벽시간에는 항상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나며 할아버지부터 찾곤 했다. 

"할아버지 나 응가하고 싶어."

어두컴컴한 시골집 뒤편의 재래식 화장실 앞을 할아버지는 항상 지키고 계셨고 새벽 한기인지 담배연기인지 모를 연기는 입가에 김이 모락모락 나듯이 뿜어져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아침인사를 하며 지저귀고 있다. 나도 아침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인사를 나눈다. 산과 나무 외딴집, 마당 앞의 커다란 감나무, 마당 구석의 덩치 큰 댕댕이 녀석에도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잠을 자야 하고 다시 재충전된 배터리 100% 상태가 되면 잠에서 깨어난다. 몸과 마음이 어제에 찌들지 않고 온전히 다시 태어난 느낌을 전해주며 새벽을 맞이할 때 예정된 오늘의 시간보다 여유로운 1시간의 오늘이 더해졌구나 생각 들 때 모든 일의 준비과정은 즐거움이 동반된다.

글을 쓴다면 종이나 펜 노트북을 켜고 잠시 글감을 찾을 겸 좋아하는 채널과 검색을 할 수도 있고 한 달 전 미쳐 다 읽지 못하고 구겨 넣은 책의 한 구절을 다시 상기시키며 쫙쫙 펴서 읽어 보기도 한다. 



하루의 끝 위로의 시작, 여기는 푸른 밤 옥상달빛입니다.



위로를 주특기로 장착한 라디오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깊은 상처와 소소했던 아픈 감정의 하루를 열심히 심폐 소생하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위로받길 원하고 위로에 목말라 있다. 

누군가 조건 없는 내편이 되어 병풍처럼 떡하니 지켜주길 원하고 하루 동안 일어난 안 좋은 일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줄 절대로 없을 친구를 바라기도 한다. 때론 내가 외롭다고 놀아달라고 말하고 싶고 분통 터지고 욕설이 난무하는 화를 삭이고 싶어 출구 없는 술을 억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오늘도 역시나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출근을 하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피라니아 떼들의 놀이터에서 순해빠진 피 냄새를 풀풀 풍기며 쥐어뜯길 생각에 몸서리치고 발걸음이 쉽사리 회사 정문에 얼어붙어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거부한다. 

"야!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

"왜 너만 쫄보처럼 쫄고 그래?" 


영하 7도의 어제 아침은 오늘과 비슷하다. 회사의 공기도 오늘과 다르지 않았다. 

동료가 오늘 퇴사를 결심했다고 귀띔해 준다. 

"부러운 녀석 나도 좀 데리고 가주라." 

더 나은 조건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사람들과 더 나은 페이까지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리길 바란다. 


멀리서 그분이 걸어오신다. 나의 오전과 오후 약간의 저녁까지 깜깜한 밤을 만들어 주시는 분이다. 수많은 애칭과 별명으로 범벅된 서울 출신의 직급은 나보다 상사이며 나보다 말도 잘하고 윗사람에게 공손하며 처세술도 뛰어난 거 같은 주목받는 회사의 어둠의 핵인싸. 그분은 오늘도 명언을 탄생시켰다. 위대한 탄생이다. 오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아직 네가 아니라며 착각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사라지신다. 또한, 주변의 와이파이 수신기 같은 많은 조력자들이 큰소리도 내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하라며 감시의 눈초리와 압박을 가해온다. 이제는 나조차도 헷갈리고 만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누가 나의 편인지 과연 이 조직 안에 편먹고 편먹는 일이 필요한 건지 의문만을 남겨둔 채 불편한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사소했던 동료와의 귀여운 핵인싸님의 흉 찾기 날개 짓이 칸막이 넘어 나비효과가 되고 싸늘한 눈초리에 덜덜 떨고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또 맞이했다. 


"나도 퇴사가 답일까?" 

이제는 새로운 환경과 조직에서 직감을 더 믿게 되었다. 첫인상이나 며칠만 함께 겪어보면 내 안의 내가 말해주는 목소리를 조건과 의심 없이 무작정 더 신뢰하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타로카드 예언처럼 갖다 붙이기만 하면 척척 들어맞아 소름이 돋기도 했다. 


회사의 빛나는 몇 명의 핵 아싸(나포함)들은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돈 더 많이 주는 회사 이야기 좔좔좔."

"여자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음담패설 아님) 좔좔좔."

"개인의 과거사에 대한 끝도 없는 이야기 좔좔좔."

"주말에 뭐할 거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 좔좔좔."


"아! 이번 주말에 넌 뭐하냐?" 이 말의 뜻은 이거라고 한다. 

<나는 이번 주말에 별 볼 일 없이 지낼 것 같은데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핵 아싸 아무개 님이 말씀하셨다. 


항상 빛나는 조직 안의 핵인싸들에 쫓겨 살아왔다. 미움도 많이 받고 상처도 받고 내발로 도망치기도 했다. 때론 맞서 싸우고 싶어 씩씩 거렸고 영화처럼 한 뼘 거리에서 이마로 받아치고 싶은 순간도 애써 참으며 내가 승리자고 현자라고 믿고 살아왔다. 스스로를 믿지 않고 억지로라도 감싸주지 않으면 나를 영영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의와 부당함, 불공평으로 무장하고 뒤에서 심리를 조장하고 행동을 멋대로 조종하려 하며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으려는 숨은 그림 찾기 속 어둠의 핵인싸들에게 두 번 다시 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천년만년 회사에 버티는 것도 답이 아닐 것이고 퇴사를 해서 홀가분해지는 것도 결코 정답은 아닐 것이다. (물론 상황이 악천후 라면 나도 퇴사를 할 것이다.) 지금은 아직 도망갈 때가 아니다. 버티고 버티되 지치지 않게 회사 밖에서의 또 다른 핵인싸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빛을 가장한 어둠의 핵인싸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여태껏 나의 예측과 예상을 번번이 뒤집으며 나는 뒤통수를 내어주었고 여지없이 그들의 총구는 도망갈곳 과 반격할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00 씨 저번에 제가 저랑 이 부서에 들어간다고 일 잘 배워 놓으라고 했잖아요. 근데 이번에 갑작스레 신입 과장님이 오셔서 그 부서 일 말고 다른 부서로 가실 수도 있어요."


"제가 그 부서 장으로 갈 줄 알았는데 계획이 급하게 바뀌어서 지금 신입 과장님도 나름 생각이 있을 테니까 그 부분은 알고 계시고 감수하셔야 되세요."




젠장. 그 부서 간다고 실컷 배웠다만 예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아쉬울 것도 없고 말 바꾸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네 말을 믿지도 않았고 이게 제갈공명의 적벽대전 전술 뺨 후려치는 계책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네가 빛을 가장한 어둠의 핵인싸라는 것을 알아봤으니까. 또한, 신입 과장도 너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을 회사 안의 핵아싸들도 다 알고 있단말이다.


너도 나를 알아봤겠지? 신입 과장, 기타 어둠의 핵인싸 와이파이 수신기들은 어쩜 그리 처세들을 잘해서 복종도 잘하고 훈련도 되어있는지 척하면 척이고  어둠의 핵인싸와 그렇고 그런 사이로 잘 굴러가고 있다. 평탄히 굴러가다가 박힌 돌인 핵아싸인 내가 걸리적거리면 처음엔 손을 내밀고 와이파이 수신기라도 되달라고 사탕을 줄 것이고, 이를 거절하고 무시한다며 점진적 보복이 시작될 것을 예언한다 감히. 

나비효과 같은 보복에 K.O패를 당할 수도 있고, 넉다운이 되어 '개인 사정'이란 남들이 다아는 사정을 들먹이며 퇴사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 또 혼자 너무 멀리 가고 말았다. 그만 돌아오자.


내가 어둠의 핵인싸 무리에 속하지 못해도 나는 나를 믿고 사랑하고 한발 한발 회사 밖의 핵인싸가 되기 위한 칼을 갈기로 했다. 이것이 진정한 나의 무기. 조직 안의 어둠의 핵인싸들은 갖지 못하는 고유한 능력이자 필살기.


빛에 쫓겨 어둠을 찾는 자는 내일도 어둠일 뿐이다.

칠흑 같은 밤을 이겨낸 자만이 새벽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


힘들지만 힘내고 이겨내자. 자살하고 싶은 어제였지만 단잠으로 묻어 버리고 어둠을 이겨낸 맑은 새벽 공기를 당당히 품고 맞이하자.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1시간 만은 오늘의 핵인싸가 되겠다. 글을 쓰고 또 쓰며 나만의 아픔은 글쓰기의 대나무 숲에 던져 버리고 소리치겠다. 나를 위로하고 상처를 꿰매고 나를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의 글을 익혀 나가자. 나의 글이 누군가의 커피 한잔이 되는 순간과 내 보잘것없는 글도 쓸모가 있다고 느꼈던 순간을 잊지 말자. 그 작은 울림은 분명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길을 안내할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통해 내 삶도 멋지구나, 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 라고 깨달으며 그럭저럭 자살하고 싶은 오늘을 넘겨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침이 좋은 이유:
 어제를 훌륭히 살아준 내가 고맙고 대견하고 대나무 숲에 무엇을 던지고 소리칠까 상상하는 게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훗날 그 대나무 숲에 사람들이 모인다면 대나무를 잘라서 책을 만들어 버리자. 그 책을 읽다 잠들면 다음날 새벽과 아침은 세상 가장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도 오리라 믿고 살아간다. 

나와 당신에게도 좋은 날이 한 번쯤은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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