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시드니, 그리고 싱가포르

4. 서울 여행도 보너스

by 하현태



뷰 시드니 호텔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그림 같은 풍경 밖으로 튕겨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시드니에서의 시간은 아직 남았지만, 영국에서도 그랬듯 공항 근처 호텔로 옮길 예정이다. 이른 아침 비행기이기도 하거니와, ‘혹시 몰라’라는 조심성 때문에 생긴 일정이다.


어딜 가든 마지막 날 아침에는 꼭 호텔 로고가 적힌 키를 사진으로 남긴다. 다음을 기약하기도 쉽고, 무엇보다 일주일 가까운 시간을 함께 지낸 방이다 보니 정도 들었기 때문이다. 애처로운 얼굴로 방을 나오니 눈물이 쏙 들어갈 풍경이 펼쳐졌다. 그래, 그 내리막을 내려가야 한다. 대충 바퀴가 달렸으니 자동차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주차장 슬로프를 내려갔다. 계단만 써서 몰랐는데, 경사가 꽤 가팔랐다. 때마침 앞서가시는 분이 계셨는데, 다음날 같은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제는 지하철 타기가 주민만큼 익숙해졌다. 물론 그곳까지의 오르막은 전혀 아니지만. 역이 호텔 바로 옆이긴 한데, 어떻게 그 길마저 오르막일 수가 있는지. 아침 댓바람부터 걸어 오르느라 애를 썼다. 그래도 직원분들의 친절 덕분에 공항까지는 편안했다. 와중에 대시보드 사이트 광고판이 붙어 있었는데, 그래프를 알파카의 침처럼 표현해둔 것이 웃기고 멋졌다.

공항에 도착하니 첫날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지하철 노선도와 시드니 전경 안내판이 보였다.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심지어는 벌써 그리워진 곳들을 보니 시드니에서의 시간이 체감되었다. 마지막 날만큼 분통한 시간이 없다.


이날은 공항과 호텔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짐을 풀고 시내에 다녀올 수는 있지만 ‘이미 떠나온 곳을 굳이?’란 핑계와 귀찮음이란 본심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체크인은 한참 남았기에 공항 빵집에 앉았다. 토마토와 치즈만 들어있는 토스트, 그리고 커스터드 타르트를 주문했다. 토스트에는 육류 없이 딱 그것만 있었다. 뭐랄까, 앙금 없는 팥빵 같달까. 어떻게 빵 사이에 고기가 없을 수 있지. 타르트는 더 가관이었다. 식은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아주 차가웠다. 정말 색다르게 맛없었다.


공항을 대충 더 둘러보다 호텔로 향했다. 공항 바로 맞은편이라 천천히 움직여도 금세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체크인까지 2시간이나 남았다. 심지어 얼리 체크인은 30달러를 더 줘야 한단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로비에서 1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테이블과 잡지가 있었고, 호텔 카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엄마가 혼자 커피를 사러 간 사이 나는 『포에틱 이펙트 1%』를 꺼냈다. 패션 잡지 위에 올려두니 제법 멋있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을 시시싯과 함께 하는 기분이랄까. 읽진 않았지만 말이다.

벽에 그려진 시드니 전경을 구경하는 사이 마침내 체크인 시간이 다가왔다.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을 따라 서서 키를 받았다. 그렇게 방에 들어오니 텔레비전 모니터에 ‘WELCOME HYUN TAE HA’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별것 아니긴 한데, 외국에서 영어로 적힌 내 이름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날을 걷기와 기다림으로 보낼 수는 없다. 우린 마지막 저녁을 위해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이곳, 심상치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웬 계단이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경사길이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옆을 보니, 작은 수동 리프트가 있었다. 있으니 써야 하지 않겠는가. 위잉 소리와 함께 바 입구에 섰다. 분명 풍경은 좋았는데, 메뉴가 술뿐이다. 물론 바니까 그럴 수 있다지만, 정말 술만 있을 줄은 몰랐다.

샴페인 1/3잔에도 취하는 내게는 언감생심이었기에 일 층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그것보다 같이 주문한 사과 페스츄리가 정말 맛있었다. 와, 아직도 기억난다. 사과의 단맛과 빵의 바삭함이 절묘했고, 약간 눅진한 느낌은 환상적이었다. 야식으로 또 먹고 싶겠다 결심하고 식당을 나섰다. 하지만 공항 맥도날드와 편의점에서 가득 품고 왔기에 그럴 수 없었다. 아, 상상만 해도 또 먹고 싶다. 이렇게 못 먹고 온 게 한 트럭이다.

마지막 날은 늘 뜬눈으로 보낸다. ‘잠은 비행기에서’를 모토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곳을 즐기는 나만의 방식이다.


이날도 구석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봤다. 그렇게 새벽 5시 무렵, 깨어난 엄마와 함께 정리를 시작했다. 푸르스름한 공기를 마시며 공항에 도착했다. 빈속이었지만, 그렇다고 뭘 먹을 만큼 고프진 않았다. 엄마는 카페에 가고 싶어 했다. 향수를 사고 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향수가 없었다. 심지어 카페는 게이트에서 너무 멀었다. 졸지에 둘 다 못한 사람들이 된 우린 니트 한 벌을 위안 삼았다. 화장실에서 바로 갈아입고 비행기를 탔다. 오, 편하고 예쁘다.


포켓몬이 그려진 비행기를 구경하니 시간이 다 되었다. 다른 휠체어 손님과 함께 가장 먼저 승차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뜨니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나와 있었다. 아, 고추장! 정말 맛있었다. 역시 짜고 매워야 음식이다.


또 눈을 감았다 뜨니 사이판을 지나고 있었다. 다가오는 인천이 미워지는 순간이다. 기내 화장실에서 거울 셀카를 한 무더기 찍었다. 거울 옆에 붙은 휴지가 아주 앙증맞다. 돌아오니 마지막 기내식으로 해물 밥이 나왔다. 밥이 설익어 조금 딱딱하긴 했지만, 나름 맛있었다.


인천이라니! 우린 지친 몸을 이끌고 그 큰 공항을 헤매었다. 다시 생각해도 인천공항 너무 크다. 분명 공항 호텔이라고 했는데, 거기까지 가는 데만 한세월이다. 마침내 찾은 다락휴. 인천공항 호텔은 처음이었다. 로비에서 키를 받고 방으로 향하니 공동 현관이 있고, 그 안에 원ㄴ룸 같은 방이 가득했다. 딱 침대만 있는 방. 생각보단 괜찮았다.

오후 8시가 넘어 그런가, 식당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심지어 근처에 편의점도 없었다. CU인 줄 알고 갔던 곳에는 웬 올리브영이 있었다. 다행히 중식당 한곳이 반짝이고 있어 짬뽕을 먹었다. 우와. 진짜 정말 맛있었다. 맵고 짠 거 최고다.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니 아침이다. 전날 밤의 대참사를 반복할 수는 없었기에, 하의실종으로 맞은편 장애인 화장실에 날아가듯 몸을 던진 것, 방에서부터 철저히 준비했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샤워 부스가 좁아서 머리만 감아도 옷이 다 젖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하나도 안 젖었다. 그냥 벗은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는 잘 씻고 잘 나왔다.


이번 시드니 여행은 서울 여행도 보너스였다. 더현대에 가기 전에 호텔 맞은편의 카페에서 커피와 레몬티를 마셨다. 그런데 빵을 주시길래 어리둥절했다. 일단 주니까 먹었다. 버터가 발린 식빵 모퉁이 조각이었는데, 아침을 안 먹기에 구경만 했다. 다 먹고 나오니 입구에 ‘오전 10시까지 빵 무료’라 적혀있었다. 그렇게 속을 채우고 곧장 5호선을 타고 더현대로 향했다. 안내판의 ‘왕십리’ 글자만 봐도 반갑고 그립다.


역시 더현대. 사람 너무 많다. 한참을 헤매다 짜장 도삭면과 딤섬을 먹었다. 후식으로는 고디바에서 빵과 아이스 초코를 먹었다. 예전에 갔을 때는 줄이 가게를 감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별로 없었다. 맛은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먹을 걸 그랬다. 엄마는 다른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슬슬 혼밥이 편해져서 좋다.

백화점 구경은 언제나 재밌다. 안경테도 구경했다. 예전에 흰색 테도 여기서 보고 구매를 결정했는데, 이번엔 검은 테를 보고 회귀를 결정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검은 테 안경이다. 물론 김해서 사긴 했지만. 무슨 테 하나 가격이 이렇게 살벌해. 역시 서울. 무섭다. 옷과 향수도 하나씩 샀다. 여행 때마다 향수를 사는 버릇이 있긴 하지만, 옷은 처음이었다. 음. 둘 다 마음에 든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늦었다. 무려 출발 1시간 30분 전 공항 도착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간신히 김포공항 안의 오셜록에서 차를 한 잔 마시는 루틴까지 지켰다.


김해에 도착하니 시드니에서 달고 온 비가 또 오고 있었다. 우린 그 길로 뒷고기를 먹는 루틴까지 꼬박 챙겨서 집에 도착했다. 거실에 기념품을 깔아두니 지난 일주일이 벽에 그려졌다. 아, 악어 육포와 캥거루 육포를 샀고, 한 입씩 먹은 다음 고스란히 아빠에게 줬다. 대신 꿀은 잘 챙겨 먹었다.


시드니. 왜 그렇게들 호주의 날씨를 찬양하는가에 대해 몸으로 느끼고 왔다. 비가 잦긴 했지만, 맑을 때는 무척이나 밝았다. 선명한 푸르름이 손안에 담기는 곳. 금 간 곳 하나 없이 청명한 마음을 그려둔 하늘. 무엇보다 친절한 사람들에 더 놀랐다. 나는 시드니의 지하철 직원분들을, 서큘러키 앞에 발사된 하현태를 일으켜 세워주시며 ‘MATE!’라 불러주던 어르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 시드니. 이렇게 마음속 고향을 또 하나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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