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이야기

by 하현태



우리는 늘 너의 집 앞 골목길에서 헤어졌다

흰 가로등에 기대어 마주잡은 손을 더듬고

LED 조명보다 화사한 눈에 서로를 담았다


원래 사랑은 식상한 이야기라던데

우리가 딱 그러했다


멍청하게 죽인 시간이 시체처럼 담장에 널브러지면

무엇이 그리 좋아서 서로를 잡은 손을 힘껏 쥐었던지

무엇이 그리 좋아서 서로가 담긴 눈을 힘껏 닦았던지


움찔거리는 입술 틈에는 머뭇거림이 고여 있었다

너는 그게 좋다고 말했다 그런 사소함이 특별한 거라고 너와 내가 흔하지 않은 이유라고


그러나 그것마저 식상해서

우리가 딱 그러해서


그날 그 가로등은 눈물이 고여서

쉴 새 없이 깜빡이기만 했다


그러니까

일기예보는 새벽 내내 소낙비 한 방울 없다 했고

오후 내내 덕수궁 둘레 걸으며 발맞췄는데


그런

식상하디 식상한

너무 뻔해서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그런 이야기처럼


너의 집 앞 골목길

흰 가로등에만

비가 쏟아져서


깜빡 깜빡


가로등은 쉴 새 없이 깜빡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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