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그런 적 있었다
그러니까 유난히 그림자가 길었던 어느 가을
벽돌들 사이로 부패 된 낙엽들 까매지던 어느 오후
바람은 뜨거워서 하아
불어도 입김 한 줌 없고 햇살은 차가워서 후우
뱉어도 땀 한 방울 없던 어느 날
나와 당신은 오밀조밀 둘러앉아
우리라는 이름 안에 서로를 껴안았고
우리라는 모임 아래 웃으며 우리였다
그래서 무엇도 아닌
그런 어느 가을 어느 오후였던 어느 날은
조금은 무거워진 잠깐으로 영영 일기 속에 숨 쉬고
그런 적 있었지
라는 말 뒤에 찰싹 붙어서
불현듯 떠올라 보란 듯 떠돌았다
그래서 나는 조막만 한 얼음 나뒹굴던 아이스 초코를 영영 흔들었고
너는 그러니까 당신들은 불투명한 캔 속 뜨거운 차를 영영 감싸 쥐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였다
아주 잠깐 하루의 팔분의 일쯤 되는 그 아주 잠깐
그동안 우리는 우리였다
얼굴이 찢어질 것 같았던 홍대의 1월과
눈과 귀 사이가 먹먹해졌던 동대문의 1월은 분명 다른 때라서
차가운 아이스 초코와 차가워진 차 한 잔의 간격만큼
1월과 1월은 분명히 같은 달
나와 당신은 분명히 다른 사람
한번은 그런 적 있었다
라는 말 뒤에 찰싹 붙어서
불현듯 떠올라 보란 듯 떠도는 그런 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