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미국, 그리고 캐나다

1. 꿈과 희망, 그리고 멀미의 땅

by 하현태



중학교 3학년 여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진학을 앞두고 일반고와 특목고 사이에서 갈등하던 차에, 김해외고의 입시설명회 소식을 알게 되었다.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향했다. 입시가 어쩌네, 교내 환경이 어쩌네.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 헉. 할 만한 슬라이드가 펼쳐졌다.


1학년 단체 미국, 캐나다 연수 및 2학년 일본 혹은 중국 연수.


미국? 캐나다? 설명을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앞뒤 재지 않고 원서를 넣었다. 간절함은 선생님마저 어느 학원에서 썼냐는 물음이 들 정도의 자소서와 함께 당당한 합격으로 이어졌다.


물론 학교생활은 아주, 아주 힘들었다. 그러나 10월. 그 한 달만을 생각하며 버티고, 버텼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대망의 미국행이.


2016년 10월 11일 새벽 4시 즈음,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1학년 전부의, 라 해봤자 100여 명이었지만, 캐리어가 각양각색의 설렘을 품고 끄르럭거렸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1시간. 김해공항에 반끼리 모여 신나게 단체 사진을 찍고 마침내, 마침내.


사진첩만 보면 순식간에 뉴욕에 도착했지만, 여정은 꽤 다사다난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뚜렷한 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도와주었던 흑인 직원이다. 당시 나는 자존감이 아주 낮았고, 영어 실력은 그것보다 더 낮았었다. 그런 와중에 환승과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처음 들은 문장이 그분의 것이었다. 교재나 원어민 선생님과는 다른, 덩치가 있는 흑인 남성의 톤은 정말 단 하나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시작부터 조금 꼬였지만, 상관없었다. 이곳은 뉴욕이니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 버스는 나와 엄마, 다 합쳐서 10명 언저리 즈음 되는 1, 2, 3반의 남자들, 5반 여자들, 그리고 교장, 교감, 1반 선생님으로 구성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난해한 조합이다. 특히 나는 멀미가 정말 심하다. 그런데 부푼 가슴들은 입을 멈출 기미가 없었고, 와중에 버스는 탔다 하면 3시간이 넘었다. 선생님들은 조용히 좀 가자고 경고했지만, 친구들은 참을 수 없었다. 나도 그 소음을 참을 수 없었다.

창밖 풍경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처음 보는 서양. 그것도 미국의 중심 뉴욕. 골목은 눈이 부셨고, 쓰레기통마저 아름다웠다. 끝없는 사진과 멀미의 도착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서양의 조각상, 책으로나 보던 유명한 그림들. 흩어진 우리는 구석구석에서 사진과 감상에 빠졌다. 사진첩을 돌아보는 와닿던 조각들과 반고흐의 그림 등은 낮은 화질임에도 선명히 감동적이다.


이후 우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향했다. 위로,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관광객과 대화했던 기억도 흐릿하게 남아있다. 유리 벽을 넘어 철창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뉴욕의 마천루는 눈이 틔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웠고, 시원했다. 그렇게 석양을 마주 보며, 첫날이 저물어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저녁을 먹고 시내를 살짝 둘러본 우린 그대로 숙소로 향했다. 여긴 조금 희미한데, 다른 버스는 일찍 출발해서 센트럴파크를 둘러보았다고 들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꽤 불만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것보다 저녁이 중식이었던 것이 더 화났다.


다음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미국 톨게이트와 미국 휴게소를 지나 미국 여행의 본 목적인 IVY 리그 투어를 시작했다.

첫 번째 학교는 예일 대학교였다. 고등학교 1학년에게 대학은, 그것도 미국의 대학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건물만큼이나 잔디가 많았고, 학생들은 거기 눕거나 앉아 학문을 탐구했다. 부럽다, 보다는 멋지다, 가 먼저 떠올랐다. 오죽하면 진흙과 낙엽, 고인 빗물마저 언젠가 글로 쓰겠지, 라는 마음으로 찍어 왔겠는가. 발을 만지면 대학에 합격한다는 동상의 누런 발을 차례로 만진 우리는 설명과 사진을 연달아 반복하며 움직였다. 3, 5반의 단체 사진이 남아있어 다시 보는데 참, 참 어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도서관이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중앙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 미로 같은 책장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 안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아주 잘 되어 있어 또 충격이었다.


이후 우린 두 번째 학교인 하버드로 향했다. 하버드! 말로나 들었던 그 하버드! 간 것도 감격인데, 그곳에서 강연도 들었다. 심리학 이론에 관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라 내용은 별 관심 없었다. 단지 하버드의 강의실. 반원 모양으로 둘러싼 그곳. 그 의자, 그 강연. 그것들만 여전히 색다르다. 첫 대학교 강의실이 하버드였으니, 한양대의 강의실을 보고 조금 실망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겠는가.

뭐 아무튼, 1학년 단체 사진과 반 단체 사진을 찍은 우리는 조금 걸었다. 그 길에 진짜 수업이 진행 중인 강의실도 보았는데, 무슨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멋졌다. 부러웠다.


기념품 가게에서 모자와 후드티, 그리고 가방을 사고 퀸시마켓으로 향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파뉼 홀 마켓플레이스, 당시에는 그저 사람 많고 복잡한 곳이라 여기었던, 에서 먹은 빠네파스타와 레몬을 뿌려 먹은 샌드위치, 그리고 5반의 J, 그리고 K와 찍은 사진을 끝으로 둘째 날이 저물었다.


아, 미국. 그곳은 정말이지 자유와 멀미의 땅이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며 사진첩을 돌아보면 새로운 감회가 돌겠거니 했는데, 썩 그렇지만은 않다. 친구들보단 허접한 사진 퀄리티와 딱 한 장 있는 셀카가 마음에 걸린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진첩과 기억에 의존하며 그때, 그곳, 그 감정을 이어가는 이유는 오직, 오직 그리움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그때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1학년일 때가 아니라 1학년의 10월 딱 그 한 달로 말이다. 지금 돌아가면 친구들과 대화를 더 나눴을까. 사진도 많이 찍고, 버스에서 수다도 떨었을까.

부질없다는 걸 알고도 이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오직, 오직 그리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