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함의 벽을 넘어
2025년 7월 20일
고요해야 할 주일, 내 세상은 예고 없는 파문으로 흔들렸다. 유럽에 있는 오빠를 대신해 새언니와 조카가 불쑥 찾아온 것이다. 내일 귀국하는 오빠를 공항에서 맞이하기 위해 엄마 집에 들렀다는 방문의 변은 합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이 ‘당일치기’가 아닌 ‘1박 2일’로 급작스럽게 변경되었을 때,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문제는 우리 집의 상태였다. 각자의 삶에 치여 아무도 돌보지 못한 공간은 무질서한 혼돈 그 자체였다. 엄마는 엄마대로, 남동생은 남동생대로, 수원에 사는 나 역시 내 몫의 삶을 꾸리기에 바빠 집안의 정돈은 늘 뒷전이었다. 작은 언질이라도 있었다면 이토록 심장이 철렁하지는 않았을 것을. 갑작스러운 숙박 통보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언니가 지금 당장 집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동생에게 다급히 연락해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달라고 부탁한 뒤, 집으로 달려가 몇 시간에 걸친 사투를 벌였다. 주말의 달콤한 휴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묵은 먼지와 어지러운 물건들을 정리하며 비지땀을 흘렸다. 청소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다섯 시 반. 조카 신발만 사고 오겠다던 새언니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했다. 초조함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자, 버스를 잘못 타 두 시간을 허비했다는 맥 빠지는 소식이 돌아왔다. 어서 내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30분만 더 기다려달라는 새언니의 부탁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저녁 여섯 시 반이 되어서야 세 사람은 지친 기색으로 도착했다. 기다리는 동안 저녁 메뉴로 제안한 족발에 모두가 동의했고, 내가 쏘기로 하고 배달 주문까지 마쳤다. 이제 한숨 돌리나 싶던 찰나, 남동생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가야 한다며 폭탄을 터뜨렸다. 그가 현관을 나서는 순간,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새언니와 조카, 그리고 나. 이 세 사람만으로 채워야 할 적막한 저녁 시간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사실 나와 새언니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3-4년의 시간 동안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지내다, 최근에야 겨우 오해를 풀고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런 우리 둘이 단둘이 있어야 한다니. 동생을 향한 원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제발 가지 말라고 붙잡았지만 소용없었다.
동생이 떠난 후, 숨 막히는 정적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그 얼음장 같은 침묵을 깬 것은 놀랍게도 새언니였다. 사소한 집안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친구, 성형, 육아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둘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우리는 생각보다 잘 통했고 서로의 마음속 부담을 덜어주었다. 대화의 중심에는 사랑스러운 조카가 있었고, 아이의 웃음소리는 우리 사이의 서먹함을 햇살처럼 녹여주었다. 걱정으로 시작했던 저녁은 뜻밖의 행복으로 가득 찼다.
나는 세상에서 어색함이라는 감정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 감정을 견디지 못해 어렸을 때부터 늘 관계 맺기에 실패했고, 따돌림을 당했다. 나는 스스로 지능이 부족하거나 어딘가 모자란 인간이라 자책하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어울리는데, 왜 나는 어딜 가나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했을까.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 없고, 오히려 피해를 줄까 봐 늘 조용히 지냈는데도 말이다.
오늘 밤, 나는 새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작은 희망을 보았다. 관계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가 마음을 열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안 좋았던 날들은 지나갔다. 오늘은 새언니와 사뭇 많이 친해진 날이다. 이 따뜻한 변화를, 이 소중한 다짐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