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춘 프렛(fret) 위의 꿈

딜레마

by 이작가야

얼마 전 꽤나 설레는 제안을 받았다.

'주 1회, 한 시간, 여섯 곡 정도 불러주세요'

귓가에 맴도는 이 숫자들은, 내게는 단순한 스케줄이 아니라,

오랫동안 꿈꿔왔던 작은 무대의

암호 같은 것이었다.


내 손끝에서 연주되는 기타의 선율.

그 위를 부드럽게 춤추는 나의 목소리,

아마추어 뮤지션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상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타 케이스를 열어 줄을 매만지면

잠든 친구를 깨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 끝에서 울리는 나무의 진동

그 익숙한 편안함,

"이제 곧, 이 소리가 누군가의 커피 잔 옆에서

작은 위로가 되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잔잔한 흥분으로 가득 찼다.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꽉 채울 그 한 시간을 상상하며, 나는 곡 리스트를 만들었다.

'김광석의 어떤 노래"를 첫 곡으로 하면 좋겠지?

"나만의 자작곡을 엔딩곡으로 장식할까?"

여섯 줄 위에서 펼쳐질 그 작고 소중한 콘서트가

내 일상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어 줄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꿈이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현실은 예상치 못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인생은 항상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예상치 못한 코러스를 던진다.


'왼 손은 당분간 절대 쓰시면 안 됩니다.'

의사의 건조하고 단호한 한 마디에

그 달콤한 여섯 줄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마치 날개를 잃은 새처럼, 나는 방 한 구석에 세워진 기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기타 케이스는 다시 닫혔고, 여섯 줄의 코드는

잊힌 약속처럼 침묵했다.

'주 1회, 한 시간, 여섯 곡'의 스케줄은 순식간에 '취소'라는 무거운 이름으로 바뀌었다.


기타를 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것은 이 타이밍이었다.

왜 하필 이때일까 절실히 원했던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가 망가져 버린 아이러니,,,


이런 상황에 "굳이 먼 거리까지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회의감까지 겹쳐왔다

만약 내 왼손이 건강했다면, 그 먼 거리쯤이야 설렘이라는 연료로

충분히 달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거리가 공연에 대한 열망보다, 상실감의 무게만큼 더 멀게 느껴진다.


가야 할 이유가 사라지니

가기 싫은 이유들(거리, 피로, 시간)만

선명하게 부각된다.

가끔은 텅 빈 카페 무대를 상상해 본다.

만약 내가 거기 서 있다면,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여섯 곡' 목록을 만들며 행복해했던 그 시간들이 어쩌면 이 좌절을 덜 아프게 해주는

유일한 위안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잠시 '휴지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기타의 프렛(fret)을 짚을 수 없는 왼손처럼,

내 마음도 잠시 멈춰 서서

다음 코드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왼손이 나을 때까지는, 기타 대신 오른손으로

펜을 쥐고 이 마음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완벽한 타이밍에

모든 것이 준비되는 행운은 흔치 않다.

대신, 불완전함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기회가 온다.

아마도 이 시간은 내게 '왼손 없이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숙제가 아닐까?

멜로디와 리듬뿐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글'이라는 노래를 부르라는 신호일 것이다.


카페의 조명 대신 방 안의 스탠드 불빛 아래서,

혹은 카페 구석 포근해 보이는 한 자리를

차지한 채 노트북 키보드 위에서 춤추는

나의 손에게 기타를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활기차고 행복한 순간을 맛보라는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한번 여섯 곡의 리스트를 펼쳐본다.

왼손이 자유로워지는 그날, 어떤 곳이든 달려가 미처 부르지 못했던 노래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부드럽고 짙은 감정으로

연주하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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