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 필요한 우정

by 이작가야

어제 친구가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해? 오글거리지 않아?"
나는 잠시 생각했다. 쉬워서가 아니라,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실수했으면 미안하다고 하는 게, 고마우면 고맙다고 하는 게,

좋으면 좋다고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런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보였나?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말들이

쉽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누군가는 "사랑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그 말을 못 꺼낸다.

둘 다 사랑하고 있는 건 똑같을 텐데.




7년을 함께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말보다 이모티콘이 편하다고 하고,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내 마음 알지?"라고 묻는다.
처음엔 답답했다. 내가 구체적으로 말했는데, 돌아오는 건 이모티콘 하나.

그래놓고 네 마음을 어떻게 알아채라는 거니.

그게 사과인지, 위로인지, 회피인지 알 수도 없는데.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다.

이 친구에게 이모티콘은 말이구나.

내가 "미안해, 고마워"라는 문장으로 쓰는 것처럼, 이 친구는 하트로, 움직이는 이모티콘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거구나.
가끔 생각한다. 내가 더 좋은 친구였다면,

이 친구도 나를 위해 변했을까? 하지만 애착은 우정의 깊이 문제가 아니다.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상대가 아무리 좋은 친구여도 친밀함 자체가 부담스럽다.

반대로 안정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가까워지는 게 자연스럽고 편하다.

나의 친구에게는 그게 숨 막히는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쓴다. 나는 말하고, 표현하고, 행동하지만 그 친구는 이모티콘 언어로 답한다. 번역이 필요한 우정. 그게 우리다.
그런데 오늘, 그 친구가 처음으로 이모티콘이 아닌 "미안해"라는 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평소엔 이모티콘으로만 넘어가던 친구가, 이번엔 글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게 나한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결국 애착은 이런 게 아닐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란 두 친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정을 나누면서,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든 메워가는 것. 때로는 내가 건너가고, 때로는 상대가 건너오고. 완벽하게 만날 순 없어도, 그 중간쯤에서 손을 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괜찮다.
"이 친구는 절대 안 변할 거야"라고 체념하면서도, "그래도 이번엔 조금 달랐잖아"라고 희망을 품는 하루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표현 방식이 달라서 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고 친구는 솔직히 표현하는 게 멋쩍고 부끄럽다는데 어쩌겠어.
그래서 나는 오늘도 먼저 말한다.

"미안해", "고마워"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친구의 언어를 이해하는 연습. 그리고 가끔은, 내 언어도 지켜내는 연습.
그게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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