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습작
현수는 제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점집에서 받은 이름이었는데 선택지가 두 개였다고 한다. 하나는 김현수, 하나는 김해인. 현수라는 이름은 어딘지 흔했고 여자 이름 같지가 않았다. 현수는 본인의 외모가 여자보다는 남자에 가깝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각진 얼굴형에 까무잡잡한 피부, 또래에 비해 큰 키가 싫었다. 무엇보다 이름에 얽힌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자신은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 생각했다.
현수의 엄마는 학창 시절 부모님께 성경책을 찢기고도 몰래 교회에 나갔다. 믿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혼자 살겠노라 다짐했지만 결국 불교 집안의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을 해주면 교회를 나가겠다고 했던 아빠는 결혼하고 두 달이 되지 못해 주말이면 등산을 갔다. 할머니는 엄마가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아생전 꾸준히 엄마를 질타했다. 제사상에 들어갈 전을 부치면서도, 설날에 절을 받으면서도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감싸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선뜻 나설 수 없었다. 현수가 엄마를 보호해줄 만한 입장이 되지 않는다고, 어렸을 때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네 이름 때문에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아니’라고 엄마는 현수를 보며 한탄하곤 했다.
귀신이 내린 이름은 주기 싫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현수는 엄마가 말하는 신은 대체 무슨 신인지, 왜 이름 짓는 것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지 묻고 싶었으나 입을 꾹 다물었다. 부정적인 기운을 타고 난 이름이라고 엄마에게 익히 들은 터라 불온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름을 탓했다.
현수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빠의 회사가 부도나면서 집이 휘청거렸다. 아주 잘 산 적은 없지만 부족함은 모르고 살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뒤로 버스비가 없어 학교를 걸어 다니게 됐다. 현수는 자연스레 가지고 싶은 걸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때때로 현수는 자신의 이름 때문에 모든 불행이 닥쳐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는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평일이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기본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나갔다.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비슷한 아줌마가 많다며 현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힘들다고는 하지만 묘하게 기운 차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목 디스크에 걸려 그만두었다. 엄마는 다시 집에서 살림을 하게 되었다. 현수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집안 사정도 보다 나아졌다. 현수의 성적은 수도권을 겉돌고 있었고 아빠는 과외를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영어 성적을 올리고 싶었던 터라 친구와 함께 그룹 과외를 받기로 했다.
야자가 끝나고 열 시 반부터 열두 시 반까지 과외를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만 덩그러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 엄마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무슨 내용이냐고 혹은 재미있느냐 물어도 ‘나는 티브이를 보긴 하지만 내용은 모른다’며 딴청을 피웠다. 그냥 켜 놓는 거라고, 외롭고 심심해서 켜놓는 거라 대답했다. 엄마는 하루 종일 현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해도 현수는 꼭 그런 것만 같았다. 엄마가 티브이를 보면서 티브이를 보고 있지 않다면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가끔 이모를 만나러 나가지 않으면 한없이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본다고 했다. 현수는 아침 여섯 시 오십 분에 나가 밤 한시가 되어야 들어오는데 엄마는 그 시간 동안 현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빠는 친구를 만나거나 일이 바빠 나가 있을 때가 많았던 반면 엄마는 친구라곤 없는 사람 같았다. 다른 엄마들은 정기적으로 만나고 여행도 간다는데 엄마는 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걸까. 현수도 나중엔 그렇게 되는 건 아닐지 묘하게 소름이 돋았다.
여느 때처럼 엄마와 밤중에 마주쳤을 때, 엄마는 여전히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울고 있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 틀어져 있었고 비만과의 싸움이 주제였다. 살찐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일주일 동안 샐러드만 먹게 한 뒤에 체지방을 재는 프로젝트였다. 평소와 다른 양을 먹느라 진땀을 빼는 참가자들의 인터뷰, 달라진 식습관이 얼마나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울고 있었다. 현수가 들어온 걸 아는지 모르는지 구슬픈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엄마가 이상해졌다.
“갱년기 같아. 갑자기 울고 그러시지?”
현수의 물음에 오빠가 대답했다.
약을 사다 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자기는 사기가 어려우니 네가 드리라고 했다.
오빠의 대답이 현수는 후련하지 못했다.
앞으로 더 써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