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생각’의 차이점

느낌, 마음에서 우러나온 날 것 그 자체

by 나의 모양

고장 난 사이렌은 ‘느낌’ ‘생각’의 신호를 구분할 줄 모른다. 생각은 크게 뇌 전두엽이 기능해 지난 경험들을 토대로 무언가를 판단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반면 느낌은 어떤 생각 회로도 거치지 않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날 것 그 자체라고 심리상담사는 내게 강조했다. 느낌에 해당하는 단어들은 ‘기쁜’, ‘충만한’ 내지는 ‘낙담한’, ‘슬픈’ 등이라고 한다.


상담 시간에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는 훈련을 처음 해봤는데 엄청 헤맸다. 결국 상담사에게 “생각과 느낌을 굳이 구분해야 하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일단 느낌의 언어들이 스스로를 덜 괴롭히고 상대방에게도 보다 유연하게 가 닿겠다 싶기는 했다. 가령 요즘 뜻대로 이직 작업이 잘 안 풀려 속상했던 나는 “아무리 열심히 일했어도 다 부질없다”, “넌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생각들을 속삭였다. 이 모든 생각을 느낌으로 치환해보면 “나는 요즘 원하는 대로 이직이 되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다” 정도가 적합하겠다.


생각과 느낌을 구분한 다음에는 스스로에게 좋은 기운을 한껏 불어넣어야 할까? 그다음은 아직 모르겠다. 다만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안 될 것이다”라는 기본 전제를 깔고 출발했다면 이제 이 시각만큼은 전복시켜버리고 싶다. 반대로 “그래도 잘 될거야”하는 가정을 뜰채 삼아 좋은 일들을 건져 올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요 근래 주변에서 “인상이 폈다”라는 말들을 깨나 듣는다. 8년 만에 창문 있고 볕 잘 드는 집으로 이사온 덕이 클 테다. 전에 살던 곳은 밖을 내다볼 창문이 없는 7평 남짓한 원룸텔이었다. 웃프지만 외출 전 바깥 날씨는 네이버 지도에서 제공하는 교통상황 cctv 기능으로 확인하곤 했다.

볕이 들지 않으니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했다. 내 지인은 이 집을 ‘감방’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지난날의 내가 왜 그 집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일과가 끝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일부러 불을 끄고 푹신함이라곤 전혀 없는 간이침대에 누워 유튜브 영상 시청에 몰두했다.


어둠에 길든 대가는 혹독했다. 8년 새 시력이 아주 크게 떨어졌다. “어두운 부정에 눈이 먼다”는 말은 진짜였다. 왜 진작 볕 드는 집으로 이사하지 않았는지 땅을 치고 후회하는 요즘이다.

그때는 추측하건대 내게 잠시나마 주변과 오롯이 단절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 나는 집 문밖을 열고 나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을 의식하고 행동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혹여나 나와 부딪힌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기분 나빠하진 않을지 걱정하곤 했다. 인턴으로 근무하던 회사에서는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아쉬운 소리를 듣지 않으려 내게 맡겨진 이상의 업무를 처리해가며 발버둥쳤다.

그때만큼은 불 꺼진 원룸방 동굴이 자꾸만 타인에게 향하는 내 시선과 신경을 원천 차단해줘 나를 숨쉬게 해주는 은신처였던 듯싶다.


8년이 지난 지금은 해가 짱짱한 아침과 붉은 노을이 하늘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저녁을 색하지 않게 마주하고 있다. 이런 하루가 곡차곡 쌓이면서 내 안에 활력이라 칭할 만한 어떤 힘이 생겨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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