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만난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저녁 자리에서 ‘연애’ 얘기는 빼놓을 수 없다. 연애를 주제로 소통하다 보면 어느 정도 거리감 있는 관계가 짧은 시간 내 느슨하게 풀어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대부분 어느 한 사람이 처절한 이별 경험담을 털어 놓으면 또 다른 이들이 자신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로 화답하는 식이다. 상대방이 겪는 상실의 아픔에 공감과 지지를 표하려는 행동일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이별담을 경청하며 나름의 반응을 보낸다. 동시에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끔 남몰래 “화제를 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직면한 상황을 견디기에 몰입한다. 사실 누군가 한 사람이 자신의 연애담으로 대화 물꼬를 트는 순간 고장 난 사이렌은 내게 ‘창피함’ 신호를 울린다. 신호 강도는 수치심보다는 무게감이 덜하지만 머리칼이 주뼛 서는 정도로 나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15년째 애인이 없는 대가를 이렇게 치르나보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첫사랑’을 만났다. 이 친구 이후 내 삶에서 현재까지 애인이라 자신 있게 부를 만한 사람은 부재하다. 사실 그 아이가 건네준 귀한 마음만큼이나 내가 부끄러움과 창피함, 수치심 등과 제법 거리를 잘 뒀던 지난 시절이 신기하고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아직도 첫사랑과 어둑해진 봄밤 대학교 도서관에서 나와 캠퍼스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던 지난날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 아이에게 “뚱뚱한 외모로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학창 시절 내리 놀림 받아 크게 상처받았다”고 술술 털어놨다. 내게 이런 ‘날것 그 자체’인 고백을 들은 이성은 여전히 이 친구 하나다. 알코올 중독 병력이 있는 내 부친이 다시 술독에 빠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도 그 앞에서 처음 꺼내봤다. 나만큼 어리고 여렸을 친구는 내 옆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기꺼이 짐을 나눠 짊어줬다.
이런 사랑을 경험도 해봤으면서 어쩌다 나는 결점 없는 척, 연애 따윈 관심사 밖인 채 연기하기에 급급한 미성숙한 어른이 돼 버렸을까. 추측해보자면 한 해 한 해 갈수록 내 인생에 비교 대상이 늘어간 점이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10년 하고도 한참 전 토익학원에서 만난 스터디원들부터 교양수업을 같이 들었던 스튜어디스 준비생 언니, 2번째 대학교에서 만난 잘난 학과 선후배와 동기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 인연을 맺게 된 모든 이들까지.
고백하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들과 스스로를 같은 선상에 줄 세워 놓고 이내 나 자신을 결점투성이 인간이라 비난하기에 분주했다. 연애는 몸의 무게가 일반 여성들보다 한참 나가는 내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져 온 지 오래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회피 능력을 타고난 덕분에 남들 눈에 ‘외로움 타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져왔다. 이조차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특정할 수 없는 지난날부터 현재까지 15년 전을 끝으로 비밀에 부친 나만의 결핍들을 남에게 들키는 순간 ‘깔봄’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짓눌려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 안의 결핍은 이번 생에 채워지기는 어렵다. 내가 동경하고 닮고 싶은 이들처럼 되기는 더욱이 불가능하다. 다만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줄 사람은 과거에 분명히 존재했고 곧 나타날 수도 있다. 부족한 나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하니 숨이 살짝 쉬어지는 듯싶다. 어떤 사람들이 다소 떨어지는 외적 조건과 가정환경을 나 그 자체로 평가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상처를 조금 빨리 털어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