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이 찾아오는 계절

내면이 어떤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진 기분이란

by 나의 모양

1년에 한번씩 고장난 사이렌은 묵직한 ‘공허함’ 신호를 신경 마디마디에 퍼트린다. 비유하자면 물방울이 한 100m 높이에서 수직 낙하하다 땅에 내려앉을 때 ‘쏴’하며 우주선 모양으로 퍼져가는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3년 전부터 매년 시에서 지원해주는 청년 심리상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심리상담사는 적절한 공감과 질문들로 나를 옭아맸던 인지 왜곡의 겉옷을 벗겨주곤 한다. 겉옷이 사라진 다음에는 예고 없이 닥치는 겨울 추위처럼 무방비 상태인 내게 거센 공허함이 들이닥치는 식이다. 매년 상담사는 바뀌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온 나 자신을 직시하도록 유도한다.


“사랑스럽고 낙천적이며 부족함이 없는...”

‘가정불화’와 ‘애정결핍‘을 난치병처럼 앓아온 내가 애초에 가질 수 없어 내 것인 양 부단히 연기해 온 것들이다. 1년 주기로 돌아오는 10주 남짓한 상담 시기에 이 연기하기를 중단하고 나면 내 안은 텅 비어 버린다.


무엇으로 공백투성이인 내 안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때 할아버지, 할머니 대신 부모가 사이좋게 손잡고 나를 응원하러 와 줬다면 조금은 덜 공허했을까. 100kg가 넘는 고도비만이라는 이유로 학교 친구들에게 날마다 놀림당하기 일쑤였던 중학교 시절 따뜻한 관심을 누려봤다면. 그때 가족 누구라도 “학교 다닐만 해?”, “요즘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없어?”하며 물어준 적이 없다.


이런 말 한마디를 필요로 한 내게는 귀갓길에 부친이 사 들고 온 과자 1박스와 아이스크림 1봉지 정도가 일종의 보상처럼 주어지곤 했다. 당시 동네 치킨집 여사장과 외도에 빠졌던 그는 일주일에 2번 정도 내가 사는 집에 들렀다. 곧장 내 방문을 열고 간식거리를 투척한 다음 다시 치킨집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비록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지만 양육자로서 자식을 유기하지 않았다는 티를 이런 식으로라도 내고 싶었나 보다. 물론 부친의 외도는 여전히 내게 상처로 남아 있다.


내면이 어떤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진 기분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여전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면이 비어있다 보니 내 안에 남길 필요가 없는 타인의 시선이나 말들을 끌어들이는 편이다. 나보다 남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삶은 불편하고 피곤하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관심 있어 하는 마음보다 상대방이 과연 나를 싫어하진 않을지 갖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부정의 어투나 단어를 내포한 말들은 나를 순식간에 잠식할 수준으로 팽창하다 이내 빵 터져 버려 파편으로 남는다. 이 파편들은 결국 마음 곳곳에 흠집을 내고 상처를 남긴다. 부정의 언어를 마음에 담는 일은 공허함을 채우기는커녕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나쁜 습관이란 걸 잘 안다.


“뚱뚱하다”, “돼지 같은 X”, “냄새난다”, “네가 싫은데 이유가 있어야 하냐”

십수 년 전부터 내 안에 남은 파편들이다. 이런 문장들과 상반되는 따뜻한 언어들을 최소 10년은 질리게 들어야 저 조각들이 밀려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힘없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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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