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에 대하여

연약한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by 나의 모양
고장 난 사이렌은 10번 중 8번 정도 ‘수치심’을 울려댄다. 주변 사람들과 가정환경이나 이성 관계를 주제로 대화 나눠야 하는 순간에는 특히나 강하고 큰 소리를 낸다. 나를 옭아맨 가정형편과 십수 년째 짝없이 혼자인 처지를 들키고 싶지 않은 불안한 마음은 사이렌 소음을 증폭시킨다. ​


가족관계증명서상 형식적으로 부모와 자녀로 남아 있을 뿐 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다. 이 치명적인 약점을 들켜버리면 나는 그 즉시 ‘하자 있는 인간’으로 빼도 박도 못하게 정의될 것만 같은 두려움을 수십 년째 견디고 있다. 어느 집안이건 사연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라지만 내 집안의 것은 서른 하고도 세 살이나 더 나이를 먹은 지금의 내게도 여전히 내려놓기 힘든 짐 그 자체다.


부모 중 ‘모’와는 아홉 살이 되기 전부터 여태껏 떨어져 지내고 있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독립하기 직전까지 13년 정도 ‘부’를 비롯해 친가 조부모와 함께 산 시간은 슬펐다. 알코올 중독을 떨쳐내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 팔다리가 강제로 묶인 그의 모습은 잔상처럼 남아 있다. 늘 술에 쩔어 있던 부는 양육자의 관심이 절실했던 어린 나를 외면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매 끼니를 섭섭지 않게 챙겨줬고 저녁이면 따끈한 아랫목 자리도 기꺼이 내줬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던 듯싶다. 연약한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더 정확히는 이런 결핍투성이인 스스로를 인정하길 원치 않았다. 티 하나 없이 부모 사랑 가득 받아 밝게 자란 양 부단히 노력했다. 이런 노력을 의심하듯 주변에서 가족 얘기를 물어올 때면 꼭꼭 숨겨온 사연을 들키지 않으려 수치심에 짓눌려가며 거짓말을 반복했다. 나를 낳아준 그녀가 개인 사업차 분가해있다 둘러대면 주위에서 간간이 “오~”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업이라는 단어로 우리 집안의 경제 수준을 그들 나름대로 평가한 결과일 테다.


개인 사업을 딱 떨어지게 설명하면 ‘건강식품 배달업’이다. 모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 물지게를 지고 빌딩을 오르내리며 녹즙을 배달하는 일이다. 물론 나는 맹세하건대 그녀와 그녀의 직업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그저 나약했던 나는 스스로를 지키겠다며 약간의 과장을 더해 다른 이들의 시선에 그럴듯하게 내 처지를 포장해 내보였을 뿐이다. 맞지 않는 원피스를 어떻게든 입어보려 압박 스타킹까지 동원해 숨은 살을 최대한 밀어내듯 수치심 뒤로 묵은 사연들을 깊이깊이 파묻어온 나였다.


온전한 나로서 막연한 기준이나 평균 같은 것들에 스스로를 끼워 넣으려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연습을 해보겠다 이제서야 결심하게 됐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결핍투성이인 사람인 것을. 상담사들의 말처럼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마음이 사랑이겠지. 물론 이런 사랑을 한때나마 받아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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