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착각

”이 사람 없다고 내 인생 안 무너져!“

by 나의 모양

고장 난 사이렌은 내가 주변인들로부터 수용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스치는 찰나 ‘단절’ 신호를 강하게 울린다. 상대방이 카카오톡 메신저로 답장을 보낼 차례인데 소위 ‘안읽씹(안 읽고 씹기)’을 시전했다거나 어쩐지 서로 서먹해진 느낌이 들 때 등등이다. 단절 신호는 곧장 “이 사람 없다고 내 인생 안 무너져” 라는 비논리적이면서도 극단의 끝을 달리는 속삭임으로 다가와 나를 괴롭힌다. 아주 오래전부터 혼자가 돼도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해왔고, 장황한 자기 최면도 일찌감치 만들어냈다. 어쩌다 이런 삶의 양식을 취하게 됐는지 짐작은 했지만 며칠 전 상담에서 그 원인을 확인 사살당해버렸다.


이번 상담 주제는 ‘부모와의 관계’였다. 그동안 내가 미뤄왔고 풀지 않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던 숙제이자 지금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상처’다. 내 부모는 서류상 가족으로 묶여 있을 뿐 사는 동안 마주할 리 없는 이들이다. 갈라선 부모를 둔 자식에게 추석이나 설날은 마음이 아주 무거워지는 법정 공휴일이다. 부모가 연을 끊은지 한 15년이 됐으니 명절마다 내가 모친 집에 머물며 부친으로부터 불편한 연락을 받고 한숨 쉬어온 세월도 그쯤 됐겠다. 사실 명절에 어떤 집에도 내려가기 싫다. 무엇보다 모친은 아마 내가 ‘이번 명절은 혼자 보내고 싶다’ 운이라도 띄우는 순간 버럭 소리를 지를 것이다. “네가 그러고도 자식이냐” 등등 온갖 무서운 소리를 쏟아 내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런 내 속도 모르면서 상담사는 내게 명절에 혼자 좀 쉬겠다고 내뱉는 게 뭐가 어렵나며 반문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급기야 상담을 중단했다. 상담사에게 “내겐 너무 힘든 일을 아무 일 아닌 듯 말로 내뱉는 그 태도에 화가 나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프로의식이 투철한 상담사는 멈추지 않고 내 안의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들여다봐야 한다 직언했다. 모친의 눈치를 봐 가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현실에 여전히 지나온 날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진단도 더해졌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내 근간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만큼 상담사에 의해 정곡을 찔린 여파는 크고 셌다.


내가 8살 때 우리 가족은 붕괴됐다. 부친이 알코올 중독을 앓다 요양이 필요해져 나도 함께 시골로 내려간 것이라 기억하는데 아마 전후 사정이 더 있었을 듯싶다. 조부모댁으로 내려오고 내가 10살이 된 해부터 모친이 일주일에 한번씩 나를 찾아왔다. 그때 나는 더러워진 속옷을 찬장 깊숙이에 숨기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할아버지가 준 용돈을 쓰지 않고 일주일 동안 모아 그녀의 손에 차비로 쥐어주기도 했다. 가끔 내가 모친이 사는 대전으로 상경해 그녀가 살던 원룸에서 하룻밤 지낸 뒤 시골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내내 미소 지어 보였다. 사실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지도 몰라 스스로 울면 안 된다 되뇌고 또 되뇌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상담사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내 행동들은 모두 버림받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발악이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모난 모습을 보이면 그녀가 다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결국 나를 집어 삼킨 셈이다. 그 결과 나는 사랑과 돌봄 받길 원하는 본능을 십수년째 외면했고 남에게 관심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마음까지 먹게 됐다.


만 33살이 된 올해를 기준으로 상처로 얼룩졌던 지난 세월과 대학교 입학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해 누린 시간들이 점차 균형 상태에 이르고 있다. 지난 과거에서는 그저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가길 가만히 기다리며 버텨야 했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금도 좀먹는 무기력과 공허함은 이젠 서서히 보내줘야 할 습관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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