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없는 여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이 Mar 31. 2023

인생일기 9.

죽음을 떠올리며.

  

나는 너무 자주, 많이 울었다. 옆에 환자분이 계셔도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꺽꺽대며 울었다. 진단 후, 재발 발생률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만약 재발 되면 어떡하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잖아. 정기적 검사를 해도 가능성이 있다는데… 이러다 나 빨리 죽는 거 아니야?라는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재발하면 또 수술하겠지? 너무 아프고 힘들겠지? 돈도 많이 들겠지? 그러다가 가족을 남겨두고 빨리 죽으면 어쩌지? 죽음까지 생각하는 단계가 오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은 무엇인가? 나는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내 몸뚱어리는 왜 이런 건가?라고 생각하자, 서러워서 눈물이 계속 났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최악의 결과만 상상하게 되니 마음이 아팠다. 젊은데 나만 억울하잖아. 잊어버려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됐다.

걱정되는 마음만 짊어진 후 친한 지인과 통화를 했는데, 그분이 희망이 되는 말을 해주셨다. 젊으니까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젊은데 뭐가 걱정이냐며. 그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맞아, 젊은데 충분히 이겨낼 힘이 있잖아. 할 수 있다!!!    

먹는 것도 귀찮다. 죽 맛없어.

 

죽을 계속 먹는데 너무 맛이 없다. 떠먹는 것이 귀찮을 정도다. 반찬도 나오지만 위암 환자식이라 잘게 썰어서 나오기 때문에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천천히 꼭꼭 씹어서 삼키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음식을 씹다 보면 대체 뭘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국도 잘 안 먹는 편인데 간이 된 짭짤한 맛을 느끼려고 몇 숟갈 떠먹을 정도다. 그러면 입맛이 좀 돌까 싶어서. 하지만 실패.   

   

위암 환자는 식사 중에는 되도록 수분 섭취를 하지 않아야 한다. 수분이 들어가면 음식이 빨리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 후 초기에는 식사를 하는 중에는 물도 마시지 않고 국에 말아먹는 것도 제한한다.  식사가 끝나도 한참 지나서 물을 마셔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음식이 더 느끼하게 느껴진 것 같다.  

    

엄마가 해주는 참치김치찌개랑 오징어 들어간 부침개랑 꼬막무침 먹고 싶다. 남편이 해주는 호떡이랑 떡볶이가 먹고 싶다. 아들이 만들어주는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 딸이 사다 주는 내 취향의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그냥 다 먹고 싶다. 동료들과 함께 먹는 돌체 라테랑  조각 케이크랑 햄버거도 먹고 싶다… 먹고 싶다를 남발하니 한숨이 나오지만 생각은 할 수 있으니까…

    

휴게실에 앉아서 핸드폰을 하다가 밖을 내다보았다. 햇살은 많이 들어오는데 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었다. 병원 안에 있으니까 계절을 잘 모르겠다. 직원분들은 다 반팔을 입고 계시고, 환자복을 입으면 춥지도 덥지도 않다. 보통 3월도 제법 추운데, 달력에서 3이란 숫자만 보면 봄이 확 다가온 것 같다. 나는 1, 2월이 너무 힘들었는데,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가는구나. 3월은 나 빼고 모든 게 새로 시작되겠지?


코로나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봄부터 독서 모임도 많이 참여하고, 주말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산책도 다니려고 했는데, 다 무산되었다. 계획이 무산된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제법 정성스레 세운 계획을 지킬 가능성이 낮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허무하기도 했다. 이럴지 모르고 세우긴 했지만.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꿔 보기로 했다. 인생엔 늘 변수가 있으니까, 그것을 개척하고 이겨내는 것 또한 삶이니까. 쉽지 않지만 기억해 두는 걸로.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일기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