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진료를 하고 항암 치료 일정을 잡고 왔다. 하루 입원해서 항암 주사를 맞는다. 2주 동안 항암약을 먹고 일주일은 쉬면서 그 주에 다시 주사를 맞는 일정으로 총 8번을 해야 한다. 많다 많아, 나 심각하네.
항암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엄마가 유방암 항암을 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어떤 상황인지는 안다. 환자는 괴롭지만, 보호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못 먹어서 속은 비었는데도 계속 토하고 열이 오를 때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이 날 때 응급실로 모시고 가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기운이 없어 축 늘어진 엄마를 보며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항암이 힘들 거니까 지금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다. 힘들 거라는 말만 들어도 걱정이 되었지만, 그때보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섭긴 마찬가지지만 한 번 해보면 좀 낫지 않을까? 긍정의 힘을 짜내보는 것이다. 이런 거라도 있어야지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퐁당퐁당 식사 스케쥴. 죽은 밥 개념이고(진밥, 된밥....) 간식은 세 번 모두 흰죽이다.
사람의 인생은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치료 일정을 잡으며 그 굴곡이 이번에 왔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아이들도 다 커서 엄마 손이 덜 가는 나이라 다행이라고 여겼고, 걱정해 주는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과 지인들이 곁에 있어서 감사하고 좋았다. 힘내자, 잘할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사랑해. 짧은 문장이지만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힘들 때마다 꺼내 보기로 했다.
아침에 진밥을 먹는데 여전히 그냥 그렇다. 저번에는 오징어가 나왔는데 먹고 싶었지만 질겼다. 그래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식감이랑 맛만 느끼고 다시 뱉었다. 껌으로 치자면 단물만 빨아먹는 느낌? 좀 더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겐 맛을 느끼는 게 중요했으니까.
진밥을 먹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이걸 먹어야 힘이 나서 견딜 수 있겠지? 웬만하면 세 숟가락은 꼭 먹어야지, 하며 시계를 보면서 천천히 먹었다. 식사 때는 시계 보면서 먹기와 전화 통화하지 않기를 약속으로 정했다. 시계를 보면서 먹는 속도를 체크해야 하고, 전화 통화를 하면 말하느라 음식을 잘게 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멍 때리며 먹기. 최대한 속에서 부담 없이 받고 소화가 잘 되도록 천천히 꼭꼭 씹어 먹기. 꼭 지키면서 빨리 회복하고 싶다.
먹는 속도를 체크하기 위해 시계를 보면서 식사를 한다.
그런데 같은 병실에 계시는 분께서 빵을 먹어보라고 주셨다. 너무 먹고 싶었지만, 조금 달기도 하고 아직 그 정도의 빵은 먹기 힘들 것 같아서, 손을 흔들며 “저 못 먹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조금만 먹어보라며 주려고 하시기에 “저 진짜 못 먹어요~”했다. 다른 분께서 “아직은 못 먹어~.”라고 하셨다. 아 서럽다. 엄청 먹고 싶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빨리 회복해서 먹고 싶다.
셀카를 찍어서 엄마, 아빠, 동생이 같이 있는 단톡방에 올렸다. 얼굴이 핼쑥해진 모습을 보면 걱정하실까 봐 안 올렸었는데, 내가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사진을 첨부했다. 엄마는 얼굴 보니 좋다고 하셨지만, 사실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자식이 아픈데 좋은 부모가 어딨겠나. 말은 그래도 속상할 것이다. 얼른 밝은 모습을 보여드릴 거다. 금방 그렇게 될 거다.
오전 간식 죽을 먹고 병원 복도를 돌면서 쉬엄쉬엄 운동을 했다.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데, 박자를 맞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머릿속은 다른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몰랐을까? 나는 왜 이렇게 둔한 걸까? 내 몸 내가 컨트롤도 못하고 신나게 먹고 놀고 일도 하고.’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당사자인 나는 그게 안 됐다.
잊어버렸다가 또 생각나고, 복도를 열 바퀴 돌면서 열 번을 생각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광합성을 했던 베란다로 나갔다. 아직 햇볕이 들 시간은 아니고, 바람이 조금씩 불었다. 추울 정도는 아니라 의자에 앉아서 또 생각을 했다. 평소에 내가 이렇게 생각을 많이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