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자란 도시를 처음으로 떠난 것은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다. 전라남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약 3년간을 지냈지만, 정작 제대로 둘러본 적은 없다. 인근 도시 중심부에만 오갈 뿐이었다. 심지어 제주도로 배를 타고 여행을 간 적도 있으면서 말이다. 그나마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여행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혼자 고흥 남열리 바닷가로 떠났던 때가 유일하다. 시간만 많고 돈이 없던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였다. 나의 첫 타지 생활이 아쉬운 이유다. 그래서 전라도를 생각하면 늘, 마음 한 부분이 텅 빈 것처럼 아리다.
눈이 올 듯 말 듯했던 12월의 전주는 여백이 많았다. 그런 여백을 제대로 즐길 수도, 채울 수도 없던 우리는 조금 어색한 사이였다. 길거리 음식을 사 먹을 수조차 없었을 만큼 너무 추워 그저 각자의 카메라를 손에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겨우 서로의 사진을 찍어줄 뿐.
눈이라도 내려주기를 나는 얼마나 바랐던가. 고작해야 여행 메이트로 서너 번의 여행을 함께한 것이 전부인 우리 사이의 여백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고, 올 듯 말 듯한 눈처럼 서로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조금은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 뭐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눈이 내리지 않은 전주의 풍경은 전라도를 생각하면 늘 그랬듯이 텅 빈 서늘함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또다시 오게 된다면, 이곳의 여백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내 마음 속 여백을 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