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구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 좋으면서도 낯설었다.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사랑의 열병을 앓던 시기이기도 해서 어떤 날은 죽은 것처럼 가만히 시간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가,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가야 했기에 또 어떤 날은 미친 것처럼 무언가에 탐닉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경험을 했던 시기일 것이다. 재즈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올드블루 old blue>라는 대구의 오래된 재즈바를 가게 되었다. 벽 한가득 재즈 음반이 빼곡하게 꽂혀 있던 것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장소가 마음에 들어서, 칵테일이 좋아서. 그렇게 자주 찾다 보니 그저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던 재즈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공연이 있는 날에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재즈의 매력에 점점 빠져갔다.
같이 가겠냐는 물음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러마고 했다. 이른 2월에 예매하고, 배송된 공연 티켓을 고이 모셔두었던 4월 어느 날엔가부터 이미 설레기 시작했다. 수서행 고속열차가 달리는 동안 우리는 타임테이블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보고 싶은 공연이 많이 겹친다. 고심 끝에 4개의 스테이지 중에서 3개의 스테이지를 골랐다. 우리의 시작은 윤석철 트리오와 백예린의 합동 무대다. 나의 재즈 입문은 국내 뮤지션들로 출발을 했던 터라 국내 뮤지션에 대한 편견이 없다. 게다가 한 달 전에 나온 따끈따끈한 정규 앨범 <4월의 D플랫>도 들었기에 이번 공연에서 연주된 수록곡조차 낯설지 않고 반가울 뿐이다. 맨발로 나온 백예린의 목소리가 또 다른 악기처럼 얹어지며 풍성한 울림으로 공간을 꽉 채운다.
다시 야외무대로 옮겨오니 고상지의 탱고 재즈 연주가 진행되고 있다. 탱고와 재즈라니. 이 조합은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반도네온 연주자로는 제일 유명하고 인기 있을 그녀의 연주는, 언뜻 보면 투박하지만 부드러운 힘이 느껴진다. 탱고와 재즈는 많이 닮았지만 엄연히 다른 장르이다. 그 닮음에 이끌려 아르헨티나 탱고팀의 내한 공연을 봤던 10월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열정적이고도 관능적인 몸짓에 매료되어 버린 그날, 나는 다짐했었다. 언젠가 아르헨티나에 가게 되면 꼭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를 틀고 길거리에서 아름다운 탱고를 추겠노라고.
더위를 피해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영국의 5인조 밴드 마마스건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된 밴드인데, 이들이 누구인지 몰라도 공연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어떻게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에 이토록 훌륭하게 걸맞은 밴드가 있나 싶을 정도로 무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무대 매너와 관객보다 더 신나게 연주하는 공연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에 이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거리를 배회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길거리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어느새 맥주를 들고 다른 뮤지션들의 공연을 즐기는 것이다. 뜻밖의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늦게나마 이렇게 좋은 밴드를 알아가게 되어 행운이다.
가시지 않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아투로 산도발(Arturo Sandoval)의 공연이 끝나는 시간이다. 이후의 스케줄은 로이킴이나 프랩(Prep), 혁오, 제시제이(Jessie J), 넬(Nell) 등 재즈와는 별 관련이 없는 뮤지션의 무대이다. 이를 두고 매해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재즈 페스티벌에 재즈는 없고, 뮤직만 있다고. 나처럼 여러 형태의 재즈를 한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불만이 틀림없다. 비싼 금액을 치르고 표를 샀는데, 재즈 뮤지션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페스티벌이라는 공간적, 금전적 등등의 한정된 제약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역시 마마스건의 공연을 보며 즐기고 있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경험하며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재즈 페스티벌의 취지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외무대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의 강렬한 빛이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두워진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이 오늘의 헤드라이너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Branford Marsalis quartet)의 공연으로 채워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당당하게 빛나는 색소폰은 다른 악기들과 화음을 맞추며 낭만적인 밤을 선사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호흡을 맞추고. 연주자들의 표정에서 그 순간을 얼마나 즐기고 있고, 사랑하는지가 담뿍 느껴진다. 그것은 여타 많은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재즈는 그 흐름이 남다르다. 그래서 같은 곡도 늘 새롭다. 아마도 나는 그런 자유롭고 즉흥적인 모습 때문에 재즈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