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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May 15. 2023

김광섭의 저녁

(feat. 수국의 저녁에)

언젠가 예술의 전당 앞을 지나다가 야경이 너무 예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 봐도 여전히....


시아버님은 생전 어머님이 하시는 집안살림을 도우시던 분으로 세탁기나 청소기도 돌리시고 가끔 주방에 빈 그릇이 있을 때는 설거지도 하시던 분이셨다. 남편은 이런 아버님 밑에서 보고 배운덕인지 아버님 생전 하시던 집안 살림을 가끔 도와주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기도 한다. 


물론 내가 하는 거와는 다르게 몇 가지의 요리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는 요리 중 먹고 싶다고 말하면 주로 해주는 편이다. 이런 시간은 남편의 등이 나에게 가장 많이 비춰오는 시간이기도 하며 우리 집에서 가장 밝고 든든한 가장의 등이다. 어느 집이나 이런 등은 가장 환하게 빛나고 있지 않을까. 

이런 남편이 오늘 일찍 들어온 덕분인지 저녁 식탁엔 멸치국수가 올라왔다. 


후~루~룩 후~루~룩 하면서 먹는 국수 가락 소리에 오월이 한 움큼씩 빨려 들어오고 국수를 거꾸로 하니 하얀 수국이 보였다. 그리고 수국이 한 뭉치 피어 오른 식탁에 김광섭의 저녁이 찾아왔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저녁에 전문」



저녁 시간은 아침에 흩어졌던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며 하나의 핏줄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가족이라는 말은 늘 애틋하고 그리우며 사랑이 존재하는 하나의 울타리이다. 수국이 한아름 피어오르는 저녁 식탁에 별들이 내려와 앉는다. 수국과 김광섭의 저녁이 만난 오월의 밤. 시인은 갔어도 여전히 내 가슴엔 살아 있는 김광섭의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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