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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Aug 14. 2023

여름과 가을사이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 

잠 속에 가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끝에 있던 이불을 끌어당겼다. 

가을이 목덜미까지 차올랐다. 

온몸을 덮어 내리는 새벽 공기가 이불을 끌어안고도 더운 기색이 없었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면 살갗에 스치는 바람결이 사뭇 다르다. 

가을이 왔다는 소식은 옷깃을 여미면서 온다. 

입추가 되면 매장의 마네킹은 여름을 벗고 가을로 갈아입는다. 

가을 신상품이 매장에 입고되면 여름옷들은 세일을 하거나 

창고로 보관되어 이월상품으로 넘어간다.


해마다 손끝에서 만져지는 원단의 느낌이 계절의 감각을 알아차리곤 했다.

가을이 우리에게 새로운 맛으로 찾아오듯, 

신상품 또한 고객들의 눈에 신선한 맛으로 찾아온다. 

그 맛에 디자인이 예쁜 옷들은 금방 팔리기도 하여 재고가 없는 상품은 

다음 예약 주문을 걸어 놓기도 한다. 


아직 깃들지 않은 햇볕의 자리.

목마름의 구원이 간절했을 영혼들이 젖은 날개를 털며 새벽을 일어선다.

상심했을 마음들 위로 새벽별이 젖어들고,

끝내 벽을 모두 덮고야 말겠다는 담쟁이의 인내가 오늘도 하늘로 향한다.


이르지 못한 여름에 결 코 저 벽을 모두 껴안고야 말겠다고. 

자기 몸이 다 할 때까지 오르고 또 올라, 

담쟁이는 오늘도 하늘 그 너머를 꿈꾸며 저 높은 곳을 기어 오른다. (가을이 내려 앉은 이른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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