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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Aug 20. 2023

느린 공원의 아침

이른 아침 산책 중

이른 아침 공원으로 향했다. 반바지를 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긴 머리는 등뒤로 넘겼다. 얼굴에는 아직 물을 대지 않았다. 산책 뒤 온몸을 씻어 내기로 했다. 땀 흘리고 난 뒤의 상쾌함이다.


며칠만 이던가. 공원 산책을 마주 한 게. 지난달에 부탁받은 일이 이렇게 틈새 없는 시간이 될 줄이야. 가을이 끝날 무렵 아마도 이 바쁜 것이 마무리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한 계절을 잠시 바쁜 시간으로 즐기기로 했다. 즐겨 쓰다 보니 쓴 맛은 그리 강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뜨거운 한낮에도 수북한 미소로 환하게 웃어 주던 그때 수국. 더러는 시들어 가는 것들도 있었지만 아직은 더 기다려 줄 것도 같았다.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걷거나 뛴다. 젊은이들의 걸음은 힘차 거나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노인들의 걸음은 느리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 칼날의 인생 회수 보다도  공원의 둘레를 더 걷는다. 노인들의 걸음을 따르기로 했다.


하늘이 느리고 구름도 느리다. 나무들도 느리고 꽃들도 느리다. 느린 것을 걷는 것은 가끔 풀지 못한 한숨을 놓기 위함이다. 숨을 참는다는 것은 각자의 방식이지만 숨을 풀어 헤치는 것도 잘 활용해야 더러는 생활가운데 스트레스도 싸이지 않는다.


옷 색깔이 모두 다르다. 신발 브랜드가 모두 다르다. 지금 신고 있는 내 조깅화엔 유명 상표가 없다. 브랜드를 잊고 산지 이미 오래되었다.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탓이다. 온전한 마음 하나면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이 지내는 오래전 습관이 되었다.


느린 시간 속에서 내 정신에 갇힌 생각을 끄집어낸다. 털어낼 생각들이 있다. 털면 안 될 생각들이 있다. 담아야 할 생각들이 있다. 담으면 안 될 생각들이 있다. 영원히 잊으면 안 될 생각들이 있다. 영원히 잊어도 살아가는데 지장 없을 생각들이 있다. 가끔 해야 될 생각들이 있다. 가끔 생각해서도 안될 생각들이 있다.


걷다가 잠시 커피를 마시며 앉아 보기로 했다. 800원을 먹은 자판기가 레쓰비 캔커피 하나를 주었다. 비어 있는 의자를 하나 찾아 앉았다. 유튜브에서 피아노 연주곡을 찾아들었다. 글 쓸 때 가끔 듣는 곡으로 정했다. 바람은 없었다. 덥지 않았다. 그러나 내 깊은 곳엔 언제나 바람이 살았다. 불어오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 피아노 연주곡이 시작되었다.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쏟아졌다.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하늘을 따라 하얀 구름도 뒤따라 왔다. 하늘과 구름을 꼭 끌어안았다. 내면의 바다가 더없이 푸르게 느껴졌다. 잊고 살아 서는 안될 영혼의 깊은 바다. 이곳에서 한 편의 글을 쓴다.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오랜만의 시간이 충분하다.


공원의 바닥 군데군데 가을이 내려앉았다.

여름의 자리에 채워지는 가을이 하루하루 반갑다.


생각 속에 생각을 가두던 생각을 다시 열어 보았다.

어느 정도 쓸모없는 생각들이 멀리 날아갔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쓴 한 편의 글 요리가 다 완성되었다.


아침 여덟 시 십 분이 되었다. 2023.8.20.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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