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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Aug 19. 2023

아버님의 가위

팔월의 가을. 2

아이의 머리가 어느 정도 자라 있을 때면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리 길이를 재시던 아버님.

그런 날은 가지고 계시던 가위와 빗을 들고

사랑의 빛이 다하도록 손주의 머리를 자르셨다.


아버님의 하루는 더없이 환한 날 이셨고,  

깎인 손주의 머리를 보며 아이의 머리가 금세 또 자라기를 기다리셨다.


교회 어르신들은 깔끔하게 잘 다듬어주는 그 가위가 좋다며

아버님을 기다리셨고 길어진 당신의 머리는 이발소로 향했다.


그러나 깎여지는 머리가 바닥에 수북이 떨어질 때면 아픔 덩어리도 쌓여가 

당신의 세월은 더 자라지 못했고, 치유 될 수 없었던 그 고통은 차마 자를 수 없었던 그 가위.


오늘은 아이의 흐른 시간을 보며 다 가르지 못한 당신의 지난 삶을 본다.


다 쓰지 못한 채 지는 것이 꽃이고 계절이니 한순간도 버리지 말고 

올곧게 바로 서야 한다며, 서랍장 한편에서 피곤을 풀어놓은 그 가위.


지난날 당신의 손에서 잘려 나가던 그 머리카락처럼 또 한 계절이 떨어지고,

아이의 어깨 위에 쌓여가던 당신의 그 사랑이 여전히 가을처럼 물들어 옵니다.



<사진자료: 박초월 사진작가님. 2023 남인도 사진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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