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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터 Feb 27. 2022

백신패스 유감

 2021년 11월 1일, 결국 백신패스 제도가 도입되었다. 나아가 2022년 1월 3일부터는 2차접종후 180일이 경과한 증명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딸의 결혼식 때문에 미국을 가야했기에 2차 백신을 빨리 맞았던 나는 180일이 지나가자 난감해졌다.

 나는 3차 백신을 맞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었던 터였다. 

 백신패스가 없으면  갈 수가 없는 다른 곳들은 조금 불편할 뿐 안 가도 되는데 식당, 카페 출입은 안 할 수가 없다.  현대사회에서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신다. 그곳을 갈 수 없다면 사회생활이 단절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백신은 오랜 시간 거쳐야 할 임상실험을 다 하지 못하고 보급되어 아직 완전하다고 할 수가 없다.  실제 이곳저곳에서 백신 사고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내가 3차 백신 접종을 꺼리는 이유는 그런 불신보다도 실제적으로 1, 2차 모두 내게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 2차 백신 모두 아스트라제네카였다. 백신을 맞은 후 병원에서 15분 대기하도록 되어 의자에 앉아있는데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이다. 나는 원래 고통을 잘 참는 편이다. 어지간한 건 아프다 소리도 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고 병원도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미련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이상 느낌이 처음에는 미세해서 이번에도 참으려다 생각하니 이건 참고 있으면 안 될 거 같았다. 백신 이상 반응을 확인하자고 15분 대기시키는 거 아닌가. 나는 간호사에게 내 증상을 말했다. 말하는 사이 증상은 점점 더 분명해져 갔다. 호흡이 가쁘고 심장의 압박이 커져 갔다. 코로 숨쉬기가 힘들어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간호사는 혈압을 재보라고 했다. 나는 병원 벽 한쪽에 있는 혈압계에 팔을 넣었다. 그렇게 나온 혈압이 158에 88이었다.  

나는 원래 저혈압 쪽에 더 가까워  100 전후에 65 전후였다. 근래 살이 찌면서 120에 75 전후까지 올랐지만 여전히 정상혈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58이라니. 불과 5분도 되지않아 수직 상승한 혈압이 놀라웠다.

다시 의사를 면담했지만 특별한 처방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십 분가량 병원에 남아 혈압을 체크하고 맥박 체크했다. 그 사이 의사를 네 번이나 만났다.  147에 83, 135에 81,  나중에 129에 77까지 내려온 걸 확인 후 귀가했다. 의사는 일단은 정상혈압이니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상이 느껴지면 119를 부르라고 했다. 1차 때라 아직 백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그 정도면 의사로서는 최선을 다해준 셈이었다. 돈 한 푼 안 낸 환자(보험으로 받았겠지만)를 한 시간 이상이나 붙들어 놓고 세심하게 체크하고 귀담아 들어주는 의사의 친절이 무척 고마왔다. 


 그날 밤 나는 평생 처음 겪는 극심한 오한에 시달렸다. 사시나무 떨 듯한다는 말이 무언지 그때 알았다. 온몸을 떨고 이가 마주칠 만큼 떨었다. 6월 말이니 더위가 시작되던 때였는데  전기장판을 켜고 장롱 깊이 들어간 솜이불을 꺼내 덮고서도 한참 더 떨다가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열흘 정도는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손끝 까딱하기 싫었고 무언가를 하려면 엄청난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다. 그 무기력증이 백신 때문인 줄 그때는 몰랐기에 나의 상상 못 할 게으름에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2차 때는 10분이 지나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혈압이 151에 81이다.  의사를 면담했다. 의사가 직접 재니 154에 84였다. 

 이번에도 병원에서 한 시간 이상 대기하고 몇 차례 혈압을 쟀다.  135까지 내려온 후 귀가했다. 오한은 없었다. 무기력증도 이틀 정도 있다가 사라졌다. 

신문 지상에 백신 후유증에 대한 기사를 보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가 않았다. 그중 뇌졸중이라든지 신체마비라든지 심장마비 같은 사고들은 내게 더 크게 와닿았다. 나는 심장의 극심한 압박을 받았고 혈압이 수직 상승했다. 그것은 충분히 그런 사고들과 연결될 수 있었다. 나는 통증은 잘 참는 편이다 하지만 이건 참으면 해결될 통증이 아니었다.  혈관이라든지 심장 쪽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3차는 맞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신문 지상에 백신 사고자로 내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 때문이라고 말해주는 책임자는 당연히 없겠지만. 대부분 기저질환 때문이라고 결론이 내려지지만 나는 기저질환도 없다. 이 나이에 따로 먹고 있는 약도 없다. 영양제 외엔. 

아스트라제네카(AZ)를 '아제 감별 주사'라고들 한다. 부작용을 느낀 사람은 대개 젊은 층이고 나이 든 사람은 무난히 넘어간다고 붙인 말이다. 실제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한 주위의 내 연령층 중에 나처럼 부작용을 심하게 겪은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2차까지 맞고 난 후 나는 친구들에게 농담하곤 했다. 

"내가 이래 젊다니까. 분명 '아제 과'는 아니라는 거 증명했지?"



그런데 백신패스가 도입되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히키코모리가 될 것인가 사회적인 인간이 될 것인가.

 빠질 수없는 중요한 약속이 잡힌 날 결국 항복 선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신을 맞으러 가면서 나는 자못 비장한 마음이었다.  내겐 목숨까지 담보로 한 큰 모험이었다. 만일을 위해 뒷정리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하다가 말았다. 혹시 모르니 가족들에게 편지라도 쓸까 하다가 그것도 포기했다.  너무 오버하는 거 같기도 하고 솔직히 좀 귀찮았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3차는  화이자였다.

1, 2차의 경우를 알고 있는 병원에서는 접종 주사 후 내 혈압부터 쟀다. 혈압은 137에 80. 그 정도면 정상으로 봐도 될 거 같았다. 백신 접중 후 처음으로 15분 안에 귀가 조치됐다. 불안해했던 거와 달리 이번에는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나? 

그럴 리가!

 역시 부작용이 있었다. 다만 1, 2차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주사를 맞은 왼팔이 너무 아파 들 수도 없고 왼팔만이 아니라 온몸이 뻐근하여 움직임이 힘들었다. 근육통과 함께 무기력증도 다시 찾아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게을러져서 그런 게 아님을 이제는 알기에 자괴감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앉아 있는 것도, 누워 있는 것도 불편했다. 성한 건 다리뿐이라 걸어 다니는 건 할 수 있었지만 종일 걷거나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무기력증 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앉거나 누워 있는 게 더 힘든 아이러니.  

다행히 사흘 후부터 무기력증과 함께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남았다. 




' 띵똥, 접종 완료자입니다.'

큐알코드를 찍으면 들려오는 소리가 씁쓸하기도 하지만 밀린 숙제를 했을 때처럼 시원하고 안심도 되었다.

 휴, 한 고비를 넘겼구나. 

이제 나는 코로나로 부터 안전하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건데.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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