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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May 10. 2016

솔향 강릉

강릉바우길2 <대관령옛길~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사천둑방길>

  산마루를 사이에 두고 나무들의 색깔은 다르다. 내륙의 봄꽃들이 피었다 지는 5월인데 영서 쪽 산들은 아직 잿빛이 감돌고 있었다. 봄을 느끼기엔 충분했지만 겨우 새순을 밀어내고 있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산철쭉들도 보름 정도는 더 있어야 절정을 맞이할 성싶었다. 산마루를 지나 영동 쪽으로 내려가면 연두가 불타고 있을 터. 전망이 훤히 트인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미세먼지 탓에 강릉 시내와 동해가 간유리 너머의 세상 같았다.     

   강릉 바우길 2구간 ‘대관령 옛길’의 이정표를 마주하자 산해진미를 앞에 둔 것처럼 설렜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한동안 쉬었는데, 다시 장거리 트레킹을 시작하려고 하니 내 삶에 다시 풍요로움을 더하려는 것처럼 흐뭇해졌다. 그동안 많은 길을 걸으면서 내 일상의 어떤 부분이 명확하게 바뀐 것도 없고, 헛된 욕망으로부터 나를 온전히 내려놓았다는 확신도 없다. 하지만 길 걷기는 세상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내 여생의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선물했다. 그래선지 길 위에 서면 항상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산마루에서 영동 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자마자 양지바른 곳에 핀 야생화들이 나를 반겼다. 매미꽃,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벌깨덩굴 등. 오랜 만에 만나서 반가운 것들. 이름을 모를 때는 그냥 풀꽃, 들꽃으로 불렀던 것들인데 이름을 불러주고부터는 김춘수의 시처럼 하나의 몸짓으로, 하나의 꽃으로 다가왔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오솔길을 오르던 젊은 부부가 내게 물었다. 

  “바람꽃인데...... 홀아비바람꽃 같군요.” 

  대답에 자신이 없었다. 한때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서 식물도감을 곁에 두고 틈틈이 보고 살았는데 어느새 모두 잊힌 이름들이 되고 말았다. 십년도 더 된 일이지만 일 년에 단 며칠만 개화한다는 ‘한계령풀꽃’을 보기 위해서 일행들과 밤길을 달려 인제까지 간 적이 있었다. 별빛이 쏟아지는 어둠 속 오두막에서 밤을 지새우고 ‘한계령풀꽃’이 자생하는 곳까지 가던 길. 아, 그 길에서 만난 온갖 야생화들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무리지어 핀 야생화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꽃다지 한 송이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된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2구간 종점인 대관령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니 오후 4시 경이 되었다. 시간이 남아서 더 걸을 수 있었으나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한 시각이 아침 여섯 시, 강릉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모텔에 자동차를 주차해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횡계로 넘어가서, 출발점인 대관령휴게소까지 택시로 이동한 여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대꼴로 오는 산골이다 보니 중간 지점에서 버스시간을 맞추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일을 기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둘째 날 아침, 시내버스를 타고 2구간 종점이자 3구간 시작인 대관령 유스호스텔에 내려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을 걷기 시작했다. 3구간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없이 그냥 걷기 시작했는데 가도 가도 숲길이었다. 몇 시간 동안 여전히 나는 숲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솔향기와 연두의 향연에 넋을 놓으면서도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탁 막히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체력이 방전되는 느낌이랄까,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사이 체력이 더 약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기척에 나무들 사이를 내려다보니 청년 둘이서 산악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임도를 오르고 있었다. 3구간 출발점에서 스친 그들이었다. 저런 취미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들의 허벅지와 종아리가 부러워졌다.      

  어명정에 이르러 생각하니 대관령에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금강송이었다. 내 양팔로 잴 수 없을 만큼 우람하고 곧게 뻗은 금강송들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예부터 궁궐을 지을 때 이 소나무들이 나라의 부름을 많이 받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2007년 광화문 복원에 쓰이기 위해 자신을 바친 금강송의 혼을 달래고, 후손들에게 그 뜻을 전하고자 어명정을 지어 그루터기를 보존하고 있었다. 내륙에서 보기 힘든 잘 생긴 소나무들을 품고 있는 강릉시가 브랜드를 ‘솔향 강릉’이라고 명명한 것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시간 남짓 걸어 명주군왕릉 입구에 다다랐다. 거기서 이어지는 4구간 ‘사천둑방길’의 일부를 걷기로 했다. 해살이마을 까지 2시간 정도, 임도를 따라 걸었다. 민들레가 지천이고 이팝나무 꽃들과 보라색 오동나무 꽃들이 눈길을 끌었다. 3구간을 출발한지 여섯 시간 만에 만나는 해살이마을, 인적이 드문 그 길에서 김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여전히 숲을 통과하며 총총히 걸었다. 통과한다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처럼 두렵기도 했다. 비오는 날 지리산에서 심산유곡을 걸은 적도 있지만 인적이 드문 길은 호젓함 보다 오히려 더 큰 두려움을 동반한다. 내가 사람인 까닭이다.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면, 추락이라도 한다면, 골절이라도 당한다면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이다. 다만 그런 걱정을 말로 드러내지 않을 뿐 기우는 항상 사람의 내면에 존재한다.     

  셋째 날 이른 아침,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사기막골 버스를 타고 전통한과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황사 때문인지 멀리 선자령 풍력발전기들의 모습이 흐렸다. 좋은 날씨를 만나는 것도 운에 속하는 일이다. 언제나 파란 하늘과 투명한 바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제주에서 느닷없이 만났던 눈보라나 지리산에서 조우했던 가을비만큼이나 예기치 않는 일이다. 일기예보를 참고하지만 길을 떠날 때는 날씨의 좋고 나쁨을 운에 맡겨야 마음이 편하다. 

  사천둑방길을 걸어서 강릉이 낳은 근현대시인 초허 김동명 문학관에 이르렀다. ‘내 마음’과 ‘파초’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문학관이란 게 문인의 업적을 기리고 후대에 역사로 남기는 것이라서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을 두고 반길만한 일이다. ‘조정래 문학관’에서 켜켜이 쌓아올린 원고지 높이를 보고 놀랐던 일처럼 그들이 불사른 열정을 보게 될 때면 감회가 남다르고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아쉽게도 휴관이라 문학관의 내부는 보지 못하고 다만 그의 생가와 그가 즐겨 걸었던 언덕을 걸어 바다를 향해 걸었다. 호젓한 마을길에서 꽃을 가꾸고, 식구들의 빨래를 하며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평화스럽게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집의 마당을 따뜻하게 들여다보았다. 늘 단란한 밥상과 어머니를 그리워 한 초허의 심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사천 해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한 바다가 나를 투과하여 힘들게 걸었던 대관령까지 비추었다. 낚시를 드리운 사람, 모래성을 쌓고 있는 아이들, 바다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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