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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빈터
진심이 닿는 순간.
by
지초지현
Jan 17. 2023
늘 첫 수업은 설레고 긴장되었다.
이번에는 한 번도 가르쳐 본 적 없는 초등학생들이다.
늘 중고등부만 하다가 특목부서로 온 이후 초등학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 칠판 앞에서 인사를 하는데 몇몇 아이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윽고 거침없이 나오는 말들.
"선생님~
나
가세요!
샘 때문이 남자선생님 안 들어오잖아요"
전에 이 반을 담당하셨던 남자선생님을 찾았다.
아마도 내가 와서 그 남자선생님이 다른 반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나 수업 안 들을래"부터 시작해서 어디까지 가능할까 수위 파악하는 듯한 몇 남학생들을 지긋이 쳐다봤다. 그까지만 해라잉~하는 눈빛으로.
수업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계획된 진도만큼 나간 후 수업 마치고 교무실에 가서야 다리가 풀렸다. 살면서 이런 거부반응을 겪게 될 줄이야.
꼬맹이들이라서 그런 건가, 내가 그리 맘에 안 드는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리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면전에 대고 얘기하다니.. 차마 교실 안에서는 표 낼 수 없었던,
벌
렁거리는 심장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다음날 오후, 나를 가장 격렬하게 밀어내었던 학생의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순간 긴장모드로 통화를 시작하는데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난 그저 그 반 수업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간 것뿐인데 왜 긴장을 하는 거지.
어머님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시더니 아이가 그 반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혹시 어제 수업시간에 아이가 무례한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그랬다면 정말 죄송하다고 하셨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거르지 못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늘 주의를 시키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앞으로 더 챙겨보도록 할 테니 혹시 맘 상했으면
부
디 풀고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아이가 어제저녁 집에 가서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며 자신의 기분을 다 토해낸 모양이었다. 어머님께서 걱정하신 부분이 기분 나쁘다고 예의 없이 굴진 않았을까였다고 한다.
긴장한 마음과 달리 오히려 통화를 마치고 나니 머리가 말갛게 정리되
는
듯했다.
다음 시간 그 반 학생들을 다시 만났다.
예의 그 학생이 또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면
서
" 샘~또 들어왔어요?" " 샘 나가라니깐요~"라고 한다.
그 학생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주위에서 눈치 보던 학생들도, 가시 돋친 말을 한 학생도 저 선생이 왜 갑자기 웃나 싶은 모양이었다.
그 학생 눈을 똑바로 보며
" 어머님과 얘기 나눠보니 너는 앞으로 바르게 클 것 같아 지금 이러는 건 그냥 봐주려고 한다."
라고 얘기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했으나 나중에는 그 의미를 알았는지 서서히 학생이 따라와 주었다.
간식을 싸 오는 반학생들과 수업시간 이후 남아서 문제에 대한 토론도 하고 서로 설명해 주기를 하며 영재원 대비를 했다. 그리하여 그 해 처음으로 20명의 반 학생들 모두 영재원에 합격하는 이변을
낳
았다.
그 당시 아이들과 영재원 대비로 온 신경을 쏟던 나를 보고 부장님이 원래 100% 합격률은 없어요,
그러니 결과에 너무
상심하지는 마세요~라고 했는데 열심히 노력한 모든 아이들이 결실을 맺게 되어 어찌나 기쁘던지.
나와 첫날 삐걱대었던 학생은 그 당시 두 번째로 높은 레벨의 영재원에 합격했다.
영재원 결과 발표 후 며칠 지나 교무실 내 책상 위에 머그잔세트가 곱게 포장되어 올려져 있었다.
선
물과 함께 있던 메모에 그 학생 이름이 적혀있었다.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다른 친구들에게는 자기가 선물준거 비밀로 해달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도 입에 손가락을 대며 쉿~! 하는 그 학생의 마음은 끝까지 지켜줬다)
올해 토끼해를 맞이하고 보니 귀여운 토끼그림이 그려져 있던 머그잔이 생각났다. 아주 오랫동안 그 머그잔을
썼
던 기억이 난다. 지금쯤 20대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을 그 학생은 아마도 멋진 청년이 되어 있을
듯
하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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