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생존전략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전날까지도 평소처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다정한 말들을 쏟아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의 메시지는 공백처럼 비어 있었다. 불안과 혼란, 그리고 묘한 모멸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뭘 더 했어야 했을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밤을 떠올렸다. 나는 그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애쓰는 모습이 싫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연인이라면 응당 어느 직장동료, 지인보다 가까운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런 불만을 쏟아낸 직후, 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회피형 인간은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한다. 그들은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랑이 주는 깊이와 연결감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한다. 가까워질수록 상대의 기대와 요구가 커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을 압도한다. 그래서 그들은 한 걸음 다가오는 순간, 두 걸음 물러난다.
친밀감은 회피형에게 있어 일종의 위협이다. 그들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는 것이 생존 전략에 가깝다. 그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순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혼란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그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가장 먼저 택하는 방법은 ‘거리 두기’다. 때로는 잠수를 타고, 때로는 이유 없는 분노로 상대방을 밀어낸다.
이런 행동은 종종 상대방에게 ‘내가 충분하지 않아서’라는 자책감을 심어준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의 부족함이 아니라, 회피형의 내적 한계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어릴 적부터 느껴온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무의식적 신념은, 관계 속에서 여전히 그들을 지배한다.
그는 늘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조건이 숨어 있었다. ‘내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내 감정을 흔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가 필요할 때만 곁에 있다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조건들. 나는 그 조건을 모른 척하며 계속 다가갔다. 하지만 결국 나를 기다리는 것은 그의 단단한 벽뿐이었다.
사라진 그를 붙잡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메시지라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멀어졌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이런 행동은 ‘추격과 도피’라는 악순환을 만든다. 불안형인 나는 더 다가가고 싶어 하고, 회피형인 그는 더 멀어지고 싶어 한다. 이 관계는 점점 더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그가 떠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가 무언가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순간부터 나는 비로소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에게 그렇게 집착했는지, 왜 그의 작은 관심에 모든 감정을 걸었는지. 그 답은 결국 내 안에 있었다.
회피형의 거리는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다. 그들이 지닌 고독은 선택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새겨진 패턴이다. 그들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바꾸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점점 잃어간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그들. 우리는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노력은 종종 무력하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거리를 인정하고,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사랑은 늘 가까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는 용기, 그리고 스스로를 단단히 붙잡는 힘이 필요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메시지 창을 열어 장문의 메시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략 내용은 이랬다.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당신의 옆에서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당신이 원치 않는다면 나도 그만하겠다. 하지만 당신이 평생 그렇게 도망다니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당신이 어려움을 겪을 때 말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나 또한 이런 나를 받아줄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일주일 뒤, 생각지도 못했던 답장을 받았다. 너무 힘들어서 멀어지려고 했는데 멀어지고, 내가 없으니 더 힘들다며.
회피형 인간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생존에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었던 것일까? 어떤 부분이 그가 그렇게 느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짐작해 보자면 나의 불안함이 폭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하면 대화로 내가 원하는 바를 간결하게 말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태도. 도망가는 그를 보며 니가 또 그러는 구나, 하며 지켜보는 시간. 그런 것들이 그를 붙잡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종종 나의 불안함과 공허함이 그를 공격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또 다시 도망갈 준비를 했지만 몇 번의 반복 끝에 이제는 그 패턴조차 대수롭지 않아졌다. 그 사이 나는 얼마나 많이 울고 기다렸는지…
이제 나는 그를 더 이상 좇지 않는다. 내 안의 공허와 불안을 마주하면서도, 그 건 내 문제로 남겨둘 수 있게 됐다. 답이 없는 곳에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건 더 큰 외로움뿐이니까. 그렇게 내가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 시간 동안 그는 점점 더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