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는 늘 따뜻한 말들을 건넸다. “너는 특별해”, “네가 있어서 좋아”, “함께 있으면 편해.” 말로는 그렇게 다정했지만, 정작 그의 행동은 늘 자유를 향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지키는 게 항상 우선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멀어졌다.
회피형 인간에게는 자유가 곧 생존이다. 이들은 관계 속에서 편안함과 온기를 느끼기보다는, 자신을 가두는 틀에 대한 공포를 더 크게 느낀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수록, 그들은 자유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때로 이성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합리적 대화도 닿지 못하게 만든다.
"오늘은 뭐해?"와 같은 일상적인 물음조차 그에겐 '구속'처럼 느껴졌을 터다.
나는 그와 함께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다. 함께 사는 집, 아침에 눈을 뜰 때 옆에 있는 얼굴, 퇴근 후 나누는 저녁 식사. 하지만 그에게 동거 제안을 꺼냈을 때, 그는 갑자기 차가워졌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와 같은 그의 말은 겉으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나를 밀어내는 결연함이 숨어 있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는 순간, 외로움이 몰려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회피형은 내면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문’을 가지고 있다. 그 문은 그들에게 안전장치다. 그 문이 없으면 숨이 막히고, 스스로를 잃을까 두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진심으로 사랑을 원하지만, 그 사랑을 누리는 법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불완전함을 마주하는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얽매임이 그들을 질식시킨다.
한 번은 낭만적인 기분이 취한 내가 먼저 그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을 때의 일이다.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사랑한다고 외쳐댔던 그였기에 나의 고백을 반가워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사랑한다는 나의 말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나도'라는 학습된 반응을 내놓았다.
나는 내심 서운했지만 여기서 따지고 들면 그를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전화기를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훗날 그에게 이유를 들은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때 왜 그렇게 답했어?"
"내가 원할 때 하고 싶어. 누가 목 조르듯이 사랑한단 말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 나의 사랑한다는 고백은 그의 목을 조르고 있던 것이다..!
그들은 상대의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에도 머릿속 어딘가에서 ‘이렇게 가까워도 될까?’, ‘이 감정에 빠져도 될까?’라는 경계선을 긋는다. 그 경계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계 앞에서 자주 혼자가 된다.
나는 한동안 그 경계를 넘으려고 애썼다. 더 많은 관심을 주고,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하면 언젠가는 그가 마음을 열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내 안의 욕망일 뿐, 그의 진짜 바람과는 달랐다. 그는 따뜻함보다 자유가 먼저인 사람이었다. 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사랑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비록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에서 조차, 그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이 원하는 때에만 허락한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함께하는 시간’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회피형에게 사랑은 ‘함께하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그들은 언제든 그 문을 열고 떠난다.
그들의 자유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나는 얼마나 안전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관계의 본질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이제는 안다. 따뜻함보다 자유가 먼저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그림자를 함께 껴안는 일이라는 것을. 그 그림자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면, 결국 그 관계는 나를 파괴할 뿐이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건강한 사랑을 위해 그 질문을 계속 붙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