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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Dec 06. 2023

빨간 버스로 오가며 :)

- 라라 소소 7

사당역 4번 출구를 나서면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금요일 퇴근 시간에는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많다. 코로나 이후로는 퇴근 시간이 다소 빨라진 것 같다. 전에는 6시가 지나야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5시만 되어도 사람이 엄청나다. 이 광경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입을 벌리며 이게 무슨 상황인가, 피란민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다음에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는 건 일상이라 사람들의 표정이 거의 다 비슷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처음인 사람들의 놀라는 모습과 익숙한 사람들이 재빠르게 이동하는 모습. 재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이다.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이동을 할 뿐. 5번 출구부터 4번 출구를 지나서 까지는 서울에서 경기도로 나가는 광역버스 – 일명 빨간 버스 –의 승차장이다. 9번과 10번 출구 쪽에도 광역버스 정거장이 있는데 그곳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이 인파는 서울과 경기를 오가며 이동하는 사람들이 매일 이렇게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오고 사람들이 타고 버스는 떠난다. 그래도 사람은 줄지 않고 또다시 길게 늘어서 있다. 버스 줄이 꼬이지 않도록 잘 서 있어야 한다.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몇 번 버스 줄이에요? 혹은 이 줄이 0000 버스 맞나요?, 라며 물어본다. 흔한 풍경이다. 그 외의 다른 말을 하지는 않는다. 낯선 사람들이니까. 나는 다행히 지상에 올라와서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4번 출구에서 바로 보이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화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두 번 빨간 버스를 탄다.


4번 출구를 올라오자마자 내가 타는 버스의 시작 지점에 있는 사람을 쳐다본다. 그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 뒤의 사람들을 주르륵 바라보며 맞는 줄을 쫓아 맨 뒤쪽으로 서둘러서 간다. 서두르지 않으면 그사이에 벌써 몇 명이 내 앞에 줄을 서버리고 마는데, 나는 그 몇 명의 차이로 안타깝게 버스를 한 대 흘려버리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내 바로 앞에서 버스 문이 닫히면, 또 문이 닫히기 전에 기사님이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쫘악 펴서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문 쪽으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이면, 그건 버스가 꽉 찼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몇몇 버스 문 옆에는 숫자가 쓰여있는 전광판이 있다. 그 숫자가 줄어들면서 내 마음도 쫄아들곤 한다. 줄어드는 숫자만큼만 버스에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끊겨버린 그런 날은 너무 슬프다. 10분 - 15분 정도를 더 기다리는 건 익숙해서 괜찮다. 책을 읽고 하늘을 바라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관찰하면 된다. 그럼에도 슬픔이 찾아오는 건 내가 조금 더 빠르게 걸었다면, 조금 더 신속하게 줄 뒤로 갔더라면 그 손바닥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기사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거절과 거부로 내가 버스 안에 속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광역버스는 고속도로를 타기 때문에 좌석 버스이고 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버스가 이동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좌석의 수만큼만 승객을 태울 수 있다. 퇴근 시간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전에는 서서도 태워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고속도로에서는 사고가 한 번 나면 크게 난다고 한다. 규정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따르는 게 맞지만 가끔은 시간에 쫓겨 마음이 바빠져서 서서라도 가고 싶은 마음에 내 앞에서 문이 닫히면 짜증도 나고 입이 비쭉 나오기도 한다. 나는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서 그나마 마음을 다독일 수 있지만, 다음 정거장인 ‘과천동행정복지센터’와 ‘의왕톨게이트’에서는 사람이 내리지 않는 한 단 한 명도 더 탈 수가 없다. 간혹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이분들은 얼마나 많은 버스를 보내고 있는 걸까.



사당역에서 줄을 서 있으면 보통은 표정 없이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책을 읽는데, 사당역까지 오는 동안 오래 탄 전철의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글자에 눈을 둘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주위를 둘러본다. 하늘의 사진을 찍고, 흘러가는 구름과 낮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내 옆에 있는 포장마차의 꽈배기와 떡볶이를 보며 군침을 삼키기도 하고, 줄에서 벗어나 건물 일층에 있는 도넛 가게로 들어가서 진한 커피와 달콤한 도넛을 먹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유혹에 무너진 적은 없다. 그렇게 사람 많은 날에는 오후에 가는 걸 테고 한번 무너지면 그날은 수원에 가는 걸 포기해야 하니까. 그걸 잘 알고 있으니까. 가끔 평소와는 다른 어색한 풍경을 발견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 자리에 다른 가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장사가 잘 될 것 같은 자리가 있다. 정류장 근처에는 늘 사람들이 많아서 장사가 잘 될 것 같은데도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바뀌는 그런 집이 꼭 있다. 한 번은 카스텔라 가게였고, 그다음에는 어묵 가게로 바뀌었다. 목이 좋은 만큼 아무래도 자릿세가 높아서 그만큼의 수익은 나지 않나 보다 하며 괜히 내가 다 아쉬워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줄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기나긴 줄에서 이탈할 경우의 후유증이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카스텔라나 어묵을 구입하는 시간에 자리를 지키며 한 명이라도 더 줄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야 십 분이라도 빨리 버스를 탈 수 있고 일분이라도 먼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도착하리라는 믿음으로.


버스는 익숙하지 않다. 버스의 흔들림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커다란 바퀴로 움직이는 버스는 안정감을 주기보다는 약간의 울렁거림을 선사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중에 아는 누구와 마주치면 반가운 마음과 어색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읽고 있던 책을 계속 읽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워서다. 동행인이 있어서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대화가 끊기는 그 순간에는 혼자서 책을 읽으며 조금 더 편안히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자주 있다. 이렇게 이동 중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버스의 울렁거림이 두통을 일으키고 두통은 메슥거림으로 이어지곤 한다. 버스를 타면 앉아야지만 나를 지탱할 수 있다. 버스에서는 창밖을 내다보며 풍경과 사람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게 좋다. 커다란 창문을 약간 열어놓고 바람을 느끼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건, 일반버스의 경우다. 광역버스는 창문이 작다. 사람들이 서 있을 공간이 없게 만들어져 있어서 좌석도 앞에서부터 두 자리씩 다닥다닥 붙어 있다. 피곤할 때는 이 공간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조금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특히 금요일 퇴근 시간에는 2층 버스를 탄다고 하더라도 꽉 차 있는 버스 내부에서 숨이 막히기도 한다.


광역버스도 2층 버스가 있다. 2층 버스라고 하면 버스 위층에 지붕이 없이 뚫려서 사람들이 밖을 바라보기에 시각적 막힘이 없는 시티투어 버스가 먼저 생각난다. - 반 정도만 지붕이 있는 버스도 있고, 지붕이 있는 상태로 2층으로만 되어 있는 시티투어 버스도 있고 다양하다. - 서울 중심, 명동이나 종로 같은 곳을 지나다 보면 시티 투어 CITY TOUR라고 크게 쓰여 있는 버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1층짜리 일반 버스보다 한 층이 더 있어 높은 모습이다. 위층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밖을 바라보고 손짓하며 어딘가를 가리키고 사진을 찍고 그러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시티투어 버스는 외국인들이나 관광객들이 타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요즘에는 국내의 관광명소를 여행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기도 했고 국내 곳곳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서 내국인들이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곤 한다. 서울과 지방의 큰 도시에 있는 시티투어 버스의 이동 경로를 보면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타봐야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아직까지는 이용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2층 광역버스에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 저기 2층 버스 지나간다, 2층 광역버스와의 첫 만남.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고 왠지 외국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2층 버스는 빨간색이 아니고 파란색 바탕에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되어 있어서 더 발랄한 이미지를 준다. 시각적으로도 빨간색 버스들 틈에 있는 파랑이니 얼마나 상쾌하게 느껴지는지! 2층 버스를 처음 탔을 때에는 2층의 맨 앞자리에 앉아보고 싶어서 마음이 어찌나 조급했는지 모른다. 2층의 맨 앞에 앉으면 커다란 창문으로 밖을 넓게 바라볼 수 있어서인지 다른 지역에서, 지방에서, 외국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사실 아름답거나 특별한 풍광은 별로 없다. 서울과 경기를 왕복하는 광역버스의 노선에는 대부분이 도로와 고속도로다. 그 사이사이에 하늘이 보이고 산이 보이고, 봄에는 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눈에 보여서 내가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계절의 변화를 미세하게 눈치채며 미소 지을 수 있다. 그 자리는 다른 좌석들에 비해서 앞 공간이 조금 더 여유가 있다.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 발을 올려놓으라고 만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좌석에 앉을 때마다 다리를 올려놓고 혼자서 신나 한다 – 봉같이 생긴 받침도 아래에 있다. 맑은 날에는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흐린 날에는 그 기운에 나도 눈을 살며시 내리뜨고 흐리게 앉아 있는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전면에 있는 커다란 창에 맺힌 빗방울과 함께 흘러내리기도 하며 그날의 날씨를 온몸으로 느낄 수도 있다. 온전한 느낌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은 설레거나 들뜨기도 하는데 옆 라인에 누군가가 앉아 있으면 나의 설렘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애써 담담한 척 노력한다. 부끄러우니까. 하지만 그 자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선호하는 자리여서 보통은 나보다 먼저 버스에 승차한 사람이 차지하곤 한다. 그럴 때는 아쉽지만 하차하기 좋은 자리로 슬쩍 이동한다.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없다면 나머지 좌석들에게 미안하게도 두 번째 자리는 의미가 없어진다.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은 조금 가파르고 좁은 편이다. 버스 입구 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뒤쪽의 내리는 문 바로 옆에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붙어 있다. 그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필요한데, 버스의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고 그 반동을 버티며 오르고 내려야 해서다. 버스가 정류장에 완전히 멈춰 선 다음에 일어서라고 방송이 나오기는 하지만 버스가 멈추고 나서 1층으로 내려오면 내가 내리기도 전에 문이 닫혀버릴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약간의 공평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면 이렇듯 들뜸과 초조를 함께 느껴야 하는 버스의 2층이 아닌가 싶다. 연세 있으신 분들이나 매일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무렇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하차가 편한 1층에 주로 앉는다. 나도 피곤한 날이나 밤에 서울로 올 때에는 2층 버스를 만나더라도 아래층에 앉아서 창에 기대어 잠이 든다.


밤의 광역버스는 애잔한 느낌이 있다. 애처롭고 애틋한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시간에 나 혼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온다. 집 안은 따뜻하고 식구들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다.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마음은 서서히 차분해진다. 굿 나잇 Good night, 이라는 인사는 종종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란함에서 벗어나 혼자가 된 이 시간에는 일반 광역버스든 이층 버스든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늦은 시간에는 버스에 사람이 거의 없다. 내가 유일한 승객인 경우도 자주 있다. 십여 분간의 기다림 끝에 좁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나 혼자서만 밖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만 창문의 공간을 내기 위해 작은 커튼을 앞뒤로 보낸다. 대부분 시간에 버스 안과 밖은 온도 차이가 나서 창문에는 방울방울 물기가 서려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습기로 희미해지고 조금씩 비치는 불빛은 나를 몽몽으로 이끈다. 이 애잔하고 쓸쓸한 시간에 속하게 됨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심한 마음에 한없이 몽몽해진다. 어느새 창가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다.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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