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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Dec 13. 2023

12월은 쭈글쭈글

- 라라 소소 8

12월은 쭈그러지는 달이다.


12월은 일반 달력으로는 연말이 되고, 가톨릭 전례력으로는 연초가 된다.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달력으로는 보통 12월 첫째 주 주말, 대림 1주를 새해의 시작이라고 일컫는다. 나는 가톨릭이다. 하지만 일반 달력도 사용하고 있다.


나에게 12월은 사회적으로 연말이어도 문제고 전례적으로 연초여도 문제가 된다. 나의 쭈그러짐은 연말과 연초에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중에도,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쭈그러졌다가 펴지고 펴지지 않은 자국이 남은 채로 또다시 쭈그러졌다가 펴지지 않기도 하고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2월이 되면, 내가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이라는 시점에서 돌아보고 반성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하는데, 쭈그러지기만 하니 그게 또 문제가 된다.     


올 한 해를 돌아봤다. 아니, 사실은 틈틈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2023년이었기에 특별히 되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냥 나의 지금을 바라보았다. 왜 바라보게 되었냐면, ‘송년회’라는 이름의 모임이 있어서였다. 그 송년회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면 나의 지금이 이렇게 처참하게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왔음에도 이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내가 이미 쭈그러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


송년회, 그곳에 참석한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건 사회적으로도 그냥 일반인의 시각으로도 눈에 보이는 어떤 성취를 보이는 무언가였다. 겉모습의 건강함과 아름다움도 당연히 존재했다. 당당한 모습마저도 반짝였다. 나만 빛이 없었다. 어둠까지는 아니었지만 소극적인 나는 소심한 나는 미소만 간간이 짓고 있었고 낯설고 빛이 나는 이들과 특별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았다.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다. 빛은 빛을 알아보았고 빛들이 뭉쳐서 더 큰 광선으로 뻗어나갔다. 그 광선은 주위를 물들였고 밝혔으며 또 다른 광선과 마주치면서 번쩍하는 스파크를 촉진했다. 빛나고 쏘아대고 밝히며 마침내는 부서지는 그런 향연을 나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눈은 즐거웠다.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에 흥미로움이 샘솟았고 유심히 그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만 골똘히 그들을 관찰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 아름다운 얼굴, 화사한 화장, 화려하거나 각자와 잘 어울리는 복장, 손짓, 등을 바라보았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서로 통하는 주제를 나눈다는 충만함이 가득 보였다. 이 안에서 ‘나’라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떠다니는 먼지였고 순간을 기록하여 남기는 사진기였다.     


늦어서 자기소개는 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자기소개를 피하기 위해 늦은 건 아니었지만 도착하고 내 지정석에 앉고 나서야 자기소개 시간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자기소개를 피해서 개인적인 안도를 했지만, 자기소개를 피했기에 나는 더욱 미세한 알갱이가 되었다. 그대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나 또한 그대들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그대들과 더불어 한껏 반짝이고 있는 닉네임 이름표로 추측할 뿐이었다. 옆에 앉은 이와 인사를 나누고, 앞에 앉은 이들과 시선을 마주치고 내 자리 위에 있는 식순 및 안내서와 꾸러미를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나머지 반대쪽에 앉은 이와는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했다. 그는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어민과 함께 일했던 직장의 첫 출근 날이 떠올랐다. 사무실에서 내 옆에 앉은 원어민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아 질문이 많았던 내가 말을 건네도 ‘yes, no.’ 너무 간단히 대답하거나 혹은 못 들은 척을 했었더랬지. 자릿세 텃세 한국인에 대한 무시가 깔려있던 그 기운이 상처가 되어 내 몸속 어딘가에 담겨있었나 보다. 그런 생각이 지금 이때 떠오르다니. 사무실에서는 나머지 반대쪽에 프린터기 등이 놓여있던 자리여서 나는 다른 동료들과 교류하기 전까지 한동안 고립되었었지만, 이번에는 반대쪽에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이가 존재해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대들은 나를 알지 못했지만, 차분히 살펴보니 나는 그대들이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대들은 어디에선가 존재감을 드러내던 사람들이었다. 존재감이라는 건 스스로 드러낼 때 발휘하기도 하지만 주위에서 받쳐 주었을 때 더 두드러지는 법이다. 그대들이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일은 없다. 그대들은 먼지가 보이면 털어낸다. 사진기가 보이면 포즈를 취한다. 먼지도 사진기도 그대들이 다정히 들여다보는 대상은 아니다. 손에 쥐고 간직하는 대상도 아님에 틀림없다.     


나는 소극적이고 내향적이고 드러나지 않으려 가만히 있는 편이지만 호기심은 많이 갖고 있다. 호기심은 종종 이런 모임의 참석으로 나타나는데 모두가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의 시간보다 완전히 낯선 사람들 곁에서 오히려 무존재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내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긴장감이 배가 되기도 한다. 지인이 조금 있는 상황과 전혀 없는 상황에서 모두. 그 긴장은 단지 다음 날에 하루 정도 아프기만 하면 나아진다. 가벼운 몸살이거나 무거운 통증, 둘 다 견딜만하다. 매번 하는 경험도 아니고 기껏해야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면 많은 걸 테니까. 한 번이 전부일 수도 있고, 앞으로는 점점 더 줄어들어 이런 경험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이라도 스스로 즐기는 수밖에 없다. 혼자임을 즐기고 살펴 봄에 애쓴다. 자주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애쓴다.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걸 공감하는 건 아니다. 이해와 공감은 다르다. 모르면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하면 되고, 질문 대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원하는 만큼 파고들면 된다. 공감은 경험치에서 오기도 하고 내면의 자아에 의해서 생성되기도 한다. 삶은 공감을 통해 이루어진 다기보다 이해를 통해서 살아지는 거라는 생각이다. 살아진다.   

  

드레스 코드가 있었다. 코드 색상 블루.     


나에게는 쨍하게 파란 후드티가 있다. 긴팔이다. 앞에는 큼직한 주머니도 있다. 등에는 노란색으로 ‘지구를 지켜라.’, 고 쓰여 있다. 내가 좋아하는 후드티다. 예상했겠지만 이 옷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행사할 때마다 입는 춘추동복이다. - 여름과 아직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에는 반팔티를 입는다. 눈에 상당히 띈다. 행사 때에는 잘 보이는 게 중요하고 또 필요하지만 ‘송년회’라는 모임에서는 시선을 집중받고 싶지 않다. 물론 옷만 화려하다고 해서 사람의 이목을 끌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나는 그저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며 포인트를 줄 수 있는 블루를 원한다. 뭐가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원피스를 입고 가고 싶은데 파란색 원피스는 없다. 채도가 낮은 파랑이라도 원피스 전체가 파랑이면 스스로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겨울의 길목이니까. 여름에는 가끔 하늘색 원피스를 입기도 한다. 집을 둘러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파란색 박스 테이프. 박준 시인의 시 그림책 <우리는 안녕>의 그림이 담겨있는 박스 테이프다. 작년 이맘때쯤 그림책과 함께 집으로 배달되었다. 아름다운 박스 테이프도 보내 준 친구의 센스란! 새해에 안녕, 인사하라며 선물해 주었는데 벌써 일 년이 지나가고 있다. 또 다른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이 박스 테이프는 아직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일단 꺼내어 그림을 감상하며 미소 짓는다. 팔찌로 차기에는 너무 커 보이네. 팔찌는 아니니까. 그러면 완장처럼 팔뚝까지 올려볼까. 오, 나쁘지 않다. 괜찮을 것 같았다. 파랑이고, 크게 눈에 띄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조금은 그 패션 스타일이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 테이프는 무게감이 있어서 위팔에서 아래로 자꾸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손으로 계속 잡고 있을 수도 없고, 잡고 있다고 치더라도 그런 모습은 태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것이었다.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운 박스 테이프 팔띠가 플랜 에이. 



플랜 비를 생각해 본다. 무엇이 있을까, 또 다른 블루. 무난한 건 스카프이지 않을까. 오래전에 엄마가 선물해 준 작은 스카프가 갑자기 생각났다. 파랑이 잔잔하게 바다와 하늘처럼 펼쳐져 있는 부드러운 실크 스카프. 목에 쁘띠 하게 두르면 적당하겠다. 이사 후에 단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사실 엄마에게 선물 받은 이후로 실크라는 재질이 부담스러워서 꺼냈다 넣고를 반복하며 거의 착용 혹은 사용하지는 않았다. 아주 보관이 잘 되어 있었다. 상자에 여전히 포장까지 되어 있는 채로. 보들보들하다. 하지만, 스카프를 어떻게 매야 하지? 그냥 아기들 목에 가제 수건 두르듯이 하기에는 내가 너무 아기가 아니다. 요즘 만능인 인스타를 뒤져본다. 다양한 방법의 스카프 매는 법이 나와 있었지만 내 검색 능력의 한계로 맘에 쏙 드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여러 번 시도 끝에 스카프만 구겨져 버렸다. 그래도 실크라서 그런지 구김이 금세 가시기는 하네. 그런 시도들이 살과 피가 되었는지 특별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 냈다. 마음에 든다. 나는 또 이렇게 스스로에게 쉽게 만족하고 말았다. 쉬운 사람인가. 가끔은 어렵고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지만 스스로에게만 그렇게 행동하고 상대에게는 쉬운 게 아닌 어렵지만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지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다가 불현듯 또 하나의 아이템이 생각났다.     


작은 액세서리, 아름다운 목걸이.     


친구가 프랑스에서 성모 발현지에 갔다가 내 축일 선물로 사 온 은색 목걸이 줄에 걸려있던 청아한 파란색 바탕의 성모님 펜던트가 생각났다. 여름에 참 잘 어울렸었는데. 산호가 살아 숨 쉬는 바다의 색이 떠오르는 맑고 쾌청한 파란색이다. 처음에는 이 파랑이 너무 화려한 건 아닌가 싶었는데, 천천히 이 파랑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성모님의 함께 하심이겠지.     



그래, 이 목걸이를 하자. 아이보리가 풍기는 흰색 바탕에 인디언 무늬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줄 패턴이 각 마디 끝에 배치되어 있는 원피스를 입고 목이 허전하지 않게 파란색 목걸이를 걸자. 그러면 패션의 완성. 플러스 드레스 코드까지 완벽. 스카프를 맬까 말까 여러 번 묶었다 풀었다 요리 대보고 조리 대보고 했다. 날이 추울지도 모르니까 일단 목 보호차 스카프는 두르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문 앞에서 결정하는 거야. 매고 입장할지 아니면 그냥 목걸이만 하고 입장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을 것 같은 나지만 은근히 신경은 많이 쓴다. 유독 예민한 부분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 신경 씀이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아서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하지만 괜찮다. 처음부터 쭈글을 생각하며 가는 자리는 아니니까. 

     

재미있고 흥미로운 마음을 간직한 채 집에 와서는 갑자기 몇 날 며칠 동안 쭈그러진 채로 있었다. 한 번 쭈그러드니 계속 쭈글쭈글해지고 말았다. 그대들의 반짝임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 반짝임 사이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중에 날아다니는 미세한 먼지이고 화사한 그대들을 찍고 기억하는 사진기일 뿐이었다. 인간의 비교는 눈으로부터 시작해서 머리로 전달되고 마음으로까지 번져간다.     


- 잘 지내나?

- 쭈글쭈글해.

- 앙대 왜 쭈글쭈글해. 풍선 불어서 펴.     


별거 아닌 문자 하나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 안 가득 바람을 불어넣고 내뿜으며 풍선을 불어 본다. 후우우우우우우우. 바람이 빠지면서 내 나이만큼의 팔자 주름이 도드라지겠지만 또다시 풍선을 만들어 순간이라도 쭈글 한 걸 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친구가 최고네.     


2023년 12월, 한 달이 지나가면 2024년 1월, 새해와 함께 새롭게 한 달이 시작된다.     


태양은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고, 달은 태양이 내는 빛을 반사해서 우리 눈에 밝게 보인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달이 태양 빛을 받는 쪽만 볼 수 있다. 태양을 등지고 있는 달은 어둡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달이다. 태양 빛을 반사시켜 빛을 내기도 하고, 태양을 등지고 어둠 속에 잠식하기도 한다. 달이 쭈그러들고 쭈그러들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최소한의 모습만을 간직하고 나면, 다시 조금씩 차올라서 언젠가는 빛을 충만히 환하게 반사시키는 보름달이 되는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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