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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Jan 17. 2024

국경을 넘어서, 시애틀로

- 라라 소소 13 : 시애틀에서의 새해 3 

나 같았으면 차 있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데리고 다녔을 텐데, 나 같았으면 차가 없더라도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어디라도 함께 다녔을 텐데, 나 같았으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새로운 문화에 접하도록 도와주었을 텐데, 나 같았으면 매일 먹는 한식이나 한국에 있는 패스트푸드보다는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캐나다식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에 데려갔을 텐데, 나 같았으면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데려가서 머무르게 해 주었을 텐데, 나 같았으면 나 같았으면 나 같았으면 나 같았으면...


한번 입 밖에 나온 ‘나 같았으면’은 수많은 ‘나 같았으면’으로 변형되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육성으로는 아니고 속으로만.


제니의 일상으로 들어온 건 우리다. 그녀는 우리에게 여행을 가자고 하지 않았다. 좋은 곳을 돌아다니자고 한 적도 없다. 단지 자신이 있는 캐나다로, 밴쿠버에 놀러 오라고만 얘기했었다. 이제 자기 방이 생겼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그렇게 말했었다. 첫 해외여행에 가슴 부풀었던 건 나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걸 경험하려고 했던 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런 걸 알면서도 KFC에서 치킨버거와 비스킷을 먹고, 맥도널드에서 특별하지 않은 버거를 살 때면 서운해지는 마음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간 유학길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되려고 하던 찰나에 대학은 떨어졌고, 지방대에 입학하거나 재수를 준비하기보다는 이참에 유학을 가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께 또 다른 좋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도 없었다는 건 순이를 통해서 들었다. 미국보다 안전하고 한국인들도 많다고 들은 것도 제니의 유학 결심에 한몫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외국 생활이라는 단어가 매력적이었고 뭐든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언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유학생으로서의 삶이 과히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라 예상한다. 또 아무리 용돈이 넉넉하더라도 마음 기댈 곳이 없으니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을지 모른다. 방학을 해서 한국에 들어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보면 캐나다에서도 같이 있고 싶었겠지. 그때는 이제 막 겨우 20대에 진입했을 뿐이었다. 제니도 순이도 나도, 우리 모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있다. 시애틀이라는 지명은 그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영화 속에 나오는 이미지가 늘 그렇듯이 순이와 나는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로맨틱하고 평화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를 시애틀의 유혹으로 끌어들인 그녀의 이름은 지혜. 영어 이름은 제이. 아버지가 시애틀 지사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시애틀로 왔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조금 다른 걸 하려고 밴쿠버로 대학에 왔고, 오랜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남자친구는 여전히 시애틀에 살고 있다고 한다. - 모든 정보는 순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제니와 같은 숙소를 쓰는 다른 누구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단지 그녀들의 식사 시간이나 어울림 시간에 자리를 함께했을 뿐이다.


지혜가 거실을 자신의 방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생활이 가장 힘든가 보다고 혼자 예상만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파트를 실제로 렌트한 장본인이 지혜였다. 똑 부러지는 면도 있고,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물론 돈도 받고 관리도 하고 있겠지. 사람을 좋아해서 집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방이 하나 비었을 때 제니가 소개를 통해서 그곳에 들어가게 된 거였다. 집에서 파티도 하고 외부인을 초대하기도 하지만 연인일 경우에는 다른 방에 혹시라도 불편을 줄 수 있으므로 잠은 외부에서 잘 것, 이게 이 집의 첫 번째 규칙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도 찾아오면 집에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우리가 예외적이라고 했다. 지혜는 순이를 설득했고, 순이는 나를 설득했다. 제니는 자신은 관계없다는 듯이 프로젝트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다 끝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지닌 채.


무료하던 차에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신남이 끼어들어 시애틀에 가는 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행 비행기티켓의 날짜를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수수료가 들 것이고 저렴한 루트로 티켓을 구입했던 만큼 수수료가 비쌀 수도 있어서 걱정이었다. 또 예상보다 오래 체류하게 될 경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부족할 텐데 하는 염려가 있었다. 현실적인 돈 문제. 비행기 티켓은 지혜가 알아봐 주었다. 수수료가 들었지만 그래도 오케이. 지혜 남지친구가 2층 집에서 살고 있는데 함께 지내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2층에 비어 있는 방이 있어서 거기서 지내면 되니까 숙소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돌아다닐 때도 남자친구 차로 다니면 되니까 차비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식비가 좀 들기는 하겠지만 초대하는 만큼 우리의 손님이니 되도록 비용이 들지 않도록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입장료가 없는 좋은 곳도 시애틀에는 많다고 했다.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자는 지혜의 말에, 우리에게 왜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하는지 나는 의문이 생겼지만 순이는 그저 좋아하고 감사해했다.


시애틀에 가게 되었다는 말에 엄마는 놀라면서도 나보다 더 신나 했다. 그래, 이왕 그렇게 된 거 실컷 놀다 오라는 말도 했다. 시애틀에는 지혜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사촌 언니가 사는 걸로 했고, 사촌 언니가 우리 모두를 초대한 걸로 얘기했다. 부모님이 함께 사는 것도 아닌데 남자친구네 집에서 머문다는 건 한국 정서에 맞지 않다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그렇게 말했다. 왠지 걱정하시지 않을까 했지만 그것도 다 내 생각이었다. 엄마는 생각보다 깨어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시애틀에 바늘처럼 생긴 타워가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꼭 올라가 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침에 지혜의 남자친구가 차를 가지고 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차도 한 대 더 있었다. 지혜의 남자친구와 한 명, 또 다른 차에는 운전자와 다른 한 명이었는데 이 둘은 커플로 보였다. 이렇게 총 4명이 두 대의 차를 타고 왔다. 한국인인데도 뭔가 느낌상으로 아메리칸 스타일 같다고 해야 할까, 인사는 했지만 어색해서 버벅댔다. 짐을 싣고 우리는 지혜와 남자친구 차에, 제니는 다른 차에 탔다. 다른 두 명은 전에도 지혜한테 놀러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 제니와는 아는 사이였다.


  


바다를 끼고 커다란 다리 위에 진입을 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국경을 넘는 시간. 총을 든 군인들이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긴장이 됐다. 그들은 주차를 하도록 신호를 보냈고 우리는 주차를 한 후에 수속을 밟기 위해서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차 안에서 신원확인을 하고 국경을 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와 순이는 여행자이자 방문객이어서 수속이 필요한 것 같았다. 지혜 남자친구가 알아서 다 해주었다. 우리는 그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뭔가를 했고 손에 땀이 났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데 뭐라고 물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뭐라고 답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무서웠다.


출입국 사무소를 그렇게 지나고 여기는 시애틀입니다, 미쿡입니다, 지혜의 장난스러운 소개로 마음이 조금은 안심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리를 하나 건넜을 뿐인데 나라가 바뀌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시애틀은 느낌도 새로웠다. 영화에서 보았던 약간 도시풍의 그런 바닷가 마을 느낌이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가성비 좋고 유명하다는 버거를 먹고, 차로 시애틀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다. 아, 이런 게 진짜 해외여행이구나! 이런저런 설명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느라 어떤 단어도 귀속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 바퀴 돌고 마트에서 장을 본 뒤에 집으로 갔다. 집에는 여러 명이 더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두 명 더 도착했다. 먹을 걸 가지고 오는 친구도 있었고, 술을 들고 온 친구도 있었다. 여자, 남자, 형, 동생,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다 한국인이었는데 한국말에 능숙한 사람도 있었고 영어가 더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었다. 신기했다. 파티 문화. 음악이 흘렀고, 부엌이든 거실이든 방이든 1층은 일상인 듯이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사람들이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이들을 지켜봤다. 순이도 제니도 어느샌가 그들 사이에 껴서 자연스러운 하나의 그림이 되고 있었다. 지혜와 제니는 홀짝홀짝 술을 잘 마시고 있었고, 순이와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도 하고 평소에 마실 기회가 많지 않기도 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무언가를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은 맥주, 가끔은 샴페인이나 와인. 평범한데 인상이 따뜻해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숙취의 두통으로 크리스마스 당일을 맞이하였다. 커튼이 다 처져있어서 방은 어두웠고 밖은 전날 밤과는 달리 고요했다. 제니와 순이는 한 명은 침대 위에서 다른 한 명은 내 옆에서 단잠에 빠져있었다. 더듬어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보니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새벽이었을 텐데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목도 마르고 머리도 아프고 공기도 너무 탁해서 슬며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었고 거실 소파와 테이블은 파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조금은 들떠있고 조금은 따뜻하면서도 질서 없이 흐트러져 있는 물건들. 부엌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조용히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제 본 것 같기도 하고 처음인 것 같기도 한 인상이다. 헬로, 잘 잤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건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이구나,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그녀는 자신이 앤디의 오래된 친구이고 어제 잠깐 스치기는 했는데 아마도 자기를 기억하지는 못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는 노랑과 갈색이 섞여 있는 파마머리여서 또 한국말도 서툴러서 한국인인가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었다. 앤디는 어제 신나게 큰 소리로 떠들던 사람이어서 기억이 났다. 한국말을 잘하지는 못했는데도 한국말로 계속 무언가를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이 둘은 어울리지 않아. 나는 그녀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2시가 넘어서 다들 일어났다.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고 정리를 하면서 숙취에는 뜨거운 클램차우더를 먹어야 한다고 다들 말했다. 클램차우더라는 단어를 생전 처음 들었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물어보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살아보니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묻어갈 수 있다. 이번에는 차가 세 대다. 세 대에 나누어 타고 클램차우더라는 걸 먹으러 간다. 오늘도 한국말과 영어가 섞여 시끌벅적하다. 외국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차는 바닷가로 갔다.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나고 커다란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있는 바닷가다. 하지만 모래사장은 보이지 않았고 우리가 다가간 펜스 아래로 바다가 출렁거렸다. 그 옆에 작은 식당이 있었다. 우리 보고 야외 테이블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그 식당에서 클램차우더를 사 가지고 왔다. 동그랗고 크고 깊은 통에 담겨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건넸다. 플라스틱 스푼과 함께. 그건 수프였다. 아, 클램차우더는 조개와 감자가 들어있는 수프구나. 뜨거운 수프가 몸에 들어가니 정말로 숙취가 싹 가시면서 몸이 따뜻하고 머리가 개운해졌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는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이 순간이 오래고 기억에 남았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크리스마스 날에 차가운 야외 벤치에 앉아 뜨거운 클램차우더를 후후 불어 마시면서 바다 너머로 일몰을 바라보던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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