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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Jan 31. 2024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 라라 소소 15 : 긴장과 느림 혹은 새어버린 옆길에 관하여

언젠가부터 긴장을 하면 입술을 손으로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발견하는 건 아니고, 입술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인식을 하게 되는 거다. 일부러 손을 떼고 입술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입술은 점점 더 말라가고 거칠어져 간다. 그 거친 입술이 공기 중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이제는 입술에 보습제를 충분히 바른다. 많이 거칠어졌을 때는 바셀린을 주로 바르고 평소에 외출했을 때에는 스틱형 입술 보습제나 립밤을 바르곤 한다. 특별히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건 아니고 선물 받은 거나 집에서 굴러다니 던 걸 사용한다. 좋은 것도 있고 별로인 것 도 있다. 그래도 새로 살 생각을 잘하지는 않는다. 있는 거 쓰면 되지, 하는 생각이 강하고 필수로 소비해야 할 다른 물건이 더 많아서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않는다. 바셀린은 큰 통으로 선물 받은 걸 쓴다. 몇 년 동안 쓰고 있다. 더 오래오래 쓸 수 있을 듯하다. 사용기간이 있겠지만 거의 매일 사용하는데 그게 큰 대수랴 싶기도 하다.


입술에 바셀린을 바르면 촉촉해진다. 촉촉해지면서 거칠었던 입술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그 부드러워진 입술 표면의 각질은 벗겨내기 쉽게 변해 버린다. 그걸 또 가만히 두기가 어렵다. 그 모든 건 긴장하고 있거나 무언가 골똘해 있거나 신경 쓰는 일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입술을 정리하는 거라는 자기 위로를 하며 거칠한 부분만을 슬쩍 뜯어내는데 이럴 때 작은 미용가위를 사용하여 다듬기만 해야 하지만 나는 또 그걸 못하고 손으로 나름 조심히 정리한다고 하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매번 알면서도 그런다. 마침내 피를 볼 때도 있고, 무사히 정리가 끝났어도 나도 모르게 숨겨진 각질을 더 찾고 있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부터 입술이 거칠거칠하다. 자꾸 입술에 손이 가고 있다. 나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잠잠이 나를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면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조금 더 나은 하루의 틈새를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을 일부러 괴롭히는 거다. 왜 괴롭히니? 나도 잘 모른다. 모르는 척하는 걸지도 모르고 진짜로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모르는 거 투성이다.



2024년 새해가 시작되었고, 1월도 거의 끝나간다. 2.0.2.4.라는 숫자에는 이상하게도 익숙하다. 평소에 많이 사용하고 늘 애정했던 숫자처럼 쓰는데 무리가 없다. 보통은 새해가 시작하고도 오랫동안 그 전해에 머무르게 되는데 올해는 그렇지가 않다. 1월 1일에 바로 2024년이라고 썼다. 2023년에 미련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건 또 아닌데 이상하다. 2024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나, 그것도 아니다. 한 해가 지나고 새 해를 맞이하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새해를 반기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는 건 알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느린 사람이다. 느린 사람답게 적응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무엇이든지 차근차근이라고 생각이 되겠지만 타인의 눈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참으로 느리게 한다. 밥 먹을 때도, 걸을 때도, 생각할 때도, 모든 순간에 느림이 나타난다. 잘 모를 수도 있다. 내가 표현을 잘 안 하니까. 심지어 밥 먹을 때에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보다 많이 먹는다고 생각한다. 늘 남들이 숟가락을 다 내려놓고도 한참뒤까지 나는 숟가락을, 어쩌면 다들 일어서기 직전까지도 젓가락질을 하고 있어서이다. 하지만 나는 늘 허기진다. 특히 함께 먹는 음식이면 더 그렇다. I’m still hungry.


오랜 시간이 주어지면 오랫동안 많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지녔다. 조금씩 천천히 잘게 부서져 들어오는 음식을 내 위는 차근히 받아들이고, 들어온 음식으로 위가 부풀면서 더 많은 음식이 들어올 수 있도록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위의 위대함이다. 하루종일도 먹을 수 있을걸? 하루종일 밥을 먹는 사람은 없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끼로 구분 지어 있고, 보통은 시간대에 따라서 식사가 정해져 있다. 그 식사 사이사이에는 간식이나 커피, 티 타임이 들어 있다. 누구나 간식 시간을 갖는 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종일 밥을 먹는 건 불가능할 수밖에. 보통은 끼니가 속해있는 시간 안에 먹어야 한다. 나의 최선은 끝까지 수저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특히 세끼를 다 챙겨 먹지 않기에 한 끼가 나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함께 음식을 먹을 때, 마른 몸 치고 참 잘 먹어, 놀랍게도 많이 먹는 다니까, 이런 소리를 들으면 난 억울해진다. 정해진 시간 안에 먹은 양을 따지면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나는 오래 씹는다. 오래 씹지 않고는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 씹는 것도 심혈을 기울여 주의를 주고 씹는다. 꼬옥꼬옥. 더 맛있다.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사람들은 음식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씹는 거야?”


우리 식구들은 나 빼고 모두 식사를 빨리하는 편이다. 엄마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시답지 않은 질문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속상했다. 어렸을 때 내가 너무 밥을 느리게 씹어 삼키자, 엄마는 내 치아 배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치아 정상.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난 집에서 그러려니 하는 존재다. 우리 7세 둥이 조카들보다 느리게 먹는다.


어른들은, 나도 어른이지만 아무튼 나 빼고 다른 어른들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1등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밥을 먹을 때도 식구들 중에 제일 먼저 먹으면 1등~ 이라면서 와아, 칭찬을 해 준다. 물론 어린아이들의 집중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 자꾸 딴짓을 하느라 밥을 잘 안 먹어서 열심히 잘 먹으라는 의미로 그렇게 추켜세워 주는 거겠지만, 세상에 1등만이 최고라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1등이라는 말을 정말로 싫어한다. 어쩌면 내가 밥 먹을 때 1등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다른 어떤 분야에서든지 느려도 괜찮다고 조카들에게 자꾸 이야기해 주는데 일주일에 두 번 보는 고모의 말보다는 매일 보는 주 양육자의 말이 조카들 귀에 더 잘 들어가겠지. 하아, 슬프다.


이건 옆길로 새는 뜬금없는 말이지만, 꼭 브이자를 하며 사진을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을 때 나도 브이를 자주 만들곤 한다. 다른 포즈를 취하려고 하면 어색할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포즈의 브이만이 있는 건 아니다. 앞으로 손을 뻗을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으며, 눈앞에 갖다 댈 수도 있다. 머리 위에 올릴 수도 있고, 뺨 옆에 붙일 수도 있다. 조카들이 찍힌 사진을 보면 기본 브이자세를 자주 취하고 있다. 또 사진을 찍을 때마다 꼭, 브이 해야지~라고 말하는 식구가 있다. 그건 포즈의 자유를 없애는 거나 다름없다. 다양하게 자유롭게 포즈를 취할 줄 알게 해 주는 게 어른의 몫 아닐까. 여러 가지 표정을 담고 싶어도 브이자에는 미소나 무뚝뚝 밖에는 담을 수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느림은 한 해를 정리하는데 또 새해를 시작하는데 나만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남들은 12월에는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의 계획을 세우더라. 누구는 그렇더라, 비교하며 생각하는 거 안 좋은 거 아는데 아무래도 눈도 있고 귀도 있다 보니 나만 바라보는 게 쉽지가 않다. 나는 12월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아니고 12월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다들 한해까지 뒤돌아보고 정리를 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새로운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우면 1월 1일부터 바로 그 계획의 실천에 돌입할 수 있으니 그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성공한 사람의 성공 비결에는 모두 미래의 계획이 들어가고 과거의 돌아봄이 존재한다. 성공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겠지만 성공이라는 말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었다는,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잘 걸어가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겠지.


나의 긴장은 여기에서 오고 있다. 지금은 새해이고, 나는 새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고, 몇몇 사람들은 올해 계획이나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는데 생각하거나 정리하지 않았으니 나는 할 말이 없고, 말을 얼버무릴 때마다 나 자신이 목표도 계획도 미래도 없는 사람 같아서 한심해 보였다. 그러니 긴장될 수밖에.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그렇다면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면 되잖아?라고 말하겠지만 하나씩 생각하고 정리하는 건 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이어서 일 년간의 큰 계획은 시간이 걸린다는 거다. 어쩌면 핑계다. 아니, 핑계 맞다. 튼 입술을 뜯고 싶어서.


옆길로 다시 한번 새자.


평소에 물건에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 편인데, 책과 감자칩에는 욕심이 좀 생긴다. 비용이 들어가는 욕심이라 수입이 적은 요즘에는 어쩔 수 없이 많이 내려지기도 했다. 욕심도 피하다 보면 줄어들더라. 그래도 마니또나 책교환 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는 새로운 책을 알게 될 거라는 기대가 생기게 마련이고 관심 갖고 있는 책을 받고 싶다는 욕심을 품기도 한다. 솔직히 사실대로 말하면 그간 나에게는 그런 운이 별로 작용하지 않았다. 읽은 책이나 갖고 있는 책을 다시 받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심지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받은 책은 내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아, 이쯤 되면 운보다는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미다스의 손과 나의 행적이 비슷한 느낌으로 가는데, 모든 건 다 욕심 때문이고 욕심이 책에 대한 순수를 파괴한 것이리라. 기계가 내 손만 닿으면 신기하게도 망가졌던 대학과 회사 생활도 문득 떠오른다. 내 손이 닿으면 다 망가진다. 새로울 게 없다. 다 올드해. 과거형이야. 같은 책을 2권 갖고 있으면 뭐 하나, 나눠줘야지. 결국 내 손에는 새로운 게 들어오지 않았다는 그런 슬픈 사연. 망가진 컴퓨터도 타인의 손에 넘어가면 멀쩡해지더라는 그런 슬펐던 사연. 아, 이번주에는 폰도 고장 났는데, 겉으로 보면 굉장히 멀쩡하다. 유심칩을 못 읽는다고 한다. 기계 고장. 우리 식구, 성인 6명이 모두 한꺼번에 핸드폰을 바꿨는데, 물론 다 다른 기종이기는 하지만, 나만 고장 났다. 2년의 약정기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다시 돌아오자면, 나의 느림과 새해와 긴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빠가 잘나서.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키도 크고 훤칠하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서 내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보다 아래였던 학생 시절에는 평범이 싫었고 비범해지고 싶었다. 지금은 평범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누구나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고 자신의 삶을 꾸준히 살아가는 여성.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행복해 보이기도 하는 삶이다. 물론 결혼하지 않고도 멋지게 살고 있는 선배들도 많고 결혼은 했으나 출산은 하지 않고 있는 지인들도 많이 있다. 평범의 기준을 내가 너무 옛날로 잡은 것 같기도 한데, 직접적인 관계와는 다르게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미혼이 드물기도 해서 평범의 기준을 잡기는 애매하다.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유는 어떠한 길을 걷고 있더라도 누구에게도 순간순간이 다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에 평범한 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에게는 회사보다 프리랜서가 더 잘 맞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잘 알고 있는데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고 대단할 때가 종종 있다. 결혼한 친구도 있고, 육아와 병행하고 있는 친구도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끈기는 성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신기하게도 끈기가 없다는 말은 성실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성실하지만 끈기가 없을 수도 있고 성실하고 끈기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과연 어느 선상에 있는가. 그냥 느린 사람이지 뭐.


입술이 조금 괜찮아졌다가 낮부터 다시 건조해졌다. 지금은 바셀린을 듬뿍 바르고 있는 상태다. 손으로는 끊임없이 자판을 누르고 있어서 입술에 손을 갖다 댈 수가 없다. 한껏 투덜거렸더니 긴장도 조금 풀리고 마음도 가라앉고 있다. 느리면 어떤가, 어디로든 나아가고 있으면 그만이지. 나아가지 못하면 또 어떤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스트레스는 받아도 미소 지어지는 일이 있는 걸.



이제는 새해에 적응 좀 하자. 어차피 살아야 할 하루가 새해에 속해 있잖아.


이번 주에 쓰고 있던 글은 이게 아니었는데 집중이 되지 않아 퇴고를 다 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다른 글을 쓰다가 일기, 투정, 웅얼거림이 되어버렸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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