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28
마사지 매트를 선물 받았다.
나는 가끔, 일 년에 한두 번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선물을 받곤 한다. 가령 짐볼이나 요가복이라든지, 주방용 주걱이라든지, DIY 펀치 니들 자수 세트 같은 게 있다. 이런 물건들이 뭐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걸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지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밥이라도 잘 챙겨 먹고 잠이라도 잘 자라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다. 심지어 작년과 그전 해에는 운동용으로 나오는 도톰한 레깅스를 각기 다른 사람에게 색색으로 받은 적도 있다. 한두 벌은 가끔 집에서 입고 있고, 나머지 레깅스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지인들이 잘 활용하며 입고 있을 것이다. 또한 요리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데워 먹기, 데쳐 먹기, 끓여 먹기 정도를 하고 있다. 가끔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밀키트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주방용 주걱은 엄마에게로. 꼼꼼한 편이고 이런저런 손으로 하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은근히 바느질이나 집중해서 해야 하는 걸 어려워한다. 펀치 니들은 몇 개 하고서 이건 나의 영역이 아니니 손재주가 좋은 친구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해 버렸다.
마사지 매트로 다시 돌아와서, 설명서에는 다양한 마사지 모드가 있고, 온열 기능도 된다고 나와 있었다. 배송 온 커다란 박스에서 꺼내니 매트 주머니가 있었고, 그 주머니에서 꺼내어 매트를 폈을 때, 내 예상보다 꽤 크고 길고 못생겨서 당황스러웠다. 마사지 기능을 틀면 바닥이 탕탕 울릴 것만 같고 그 소리가 다른 집에 울려 퍼질 것 같다. 나한테는 아무렇지 않을지라도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퉁퉁거림은 타인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예민하게 만들 수도 있다. 모드가 많긴 하지만 아직 누워서 제대로 해보지는 않았다. 생리가 시작해서 마사지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온열 기능에 한껏 기대가 생겼다. 이 정도의 크기이니 날이 추워지면 (요즘 더워지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때에 또다시 추위가 찾아오리라) 전기장판을 깔지 않아도 이 마사지 매트 하나로 따뜻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온열 기능 on. 설명서를 읽어 봐도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세 가지 모드가 있다는데 이들이 각각 무엇이 다른 건지, 각 단계 별로 따뜻함의 차이도 잘 못 느끼겠고, 그렇게 따뜻하지도 않다. 내가 너무 뜨거운 찜질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천연 가죽으로 되어 있다는 이 매트의 질감 자체가 너무 차갑다. 내 몸의 열기로 매트가 따뜻해지는 것 같은데 피부가 닿지 않은 곳은 그 천연 가죽이 여전히 차가운 상태다. 이 위에 천을 씌우면 괜찮을까? 근데 천을 씌우면 매트의 열기가 과연 나에게 전해질까? 두께가 있어서 침대 위에 놓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온열 기능이 오래가지 않을 듯해서 아쉽다. 카운트 다운이 되는 걸 보니 딱 10분만 켜지는 것 같다. 따뜻함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0, 9, 8, 7, 6, 5, 4, ,.... off. 그래도 이왕 내 식구가 되었으니 어디 한 구석에 접힌 상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몸이 찌뿌둥할 때 이 마사지 매트의 온열 기능이 나에게 도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문득,
사람들이 마사지 의자에 혹하는 이유가 뭘까?
찜질방이나 목욕탕에 갔을 때, 혹은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마사지 의자를 파는 곳을 지나칠 때 커다란 마사지 의자에 앉아서 편안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사지를 받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몸을 늘어뜨리고 개운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버린다. 집에서 매일 편안하고 간편하게 몸의 뭉친 부분을 풀고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기하게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몸은 늘 천근만근 하다.
실내 자전거나 트레드밀(러닝 머신)을 집에 하나씩은 갖춰 놓고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지도 모르겠다. 운동기구를 살 때에는 집에서 TV를 보면서 혹은 비는 시간 틈틈이 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가 십분 활용할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있을 것이다. 또한 헬스장이나 다른 운동같이 사용료 혹은 수강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따로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훨씬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속적인 운동을 하면 그게 맞는 말일 거다. 이론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초기에 그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몇 번 하고 나면 곧 집에서조차도 운동은 귀찮아진다. 집에 들어오면 몸이 늘어지면서 편안하게 쉬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그리고 무언가를, 가령 수건이라든지 겉옷이라든지, 한번 운동기구에 올려놓거나 걸어 놓고 나면 그 위로 무더기가 쌓이는 건 순식간이다. 우리의 의자를 보라. 일주일 치 옷이 쌓여 있지 않은가? 의자는 의자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고 옷걸이의 기능으로 어느새 변해 있다.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자꾸 침대나 소파로 기어들어 가게 되니까 생기는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작고, 나는 책상에 오래 앉아 있고 매일 책상을 쓰니까 지금은 이런 일이 거의 없는데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 방 책상 말고도 다른 공간이 있고 부엌에 식탁도 있으니, 방에 있는 의자가 책상 의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옷걸이의 역할을 하곤 했다. 지금은 그때 그 의자의 역할을 문고리가 하고 있다. 문고리에는 세탁이 다 된 다섯 벌의 티가 옷장에 들어가지 않고 일주일째 걸려 있다. 하나씩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할 거라고 믿는다. 짐볼이 있으면 짐볼을 이용한 운동을 할 거라고, 트레드밀이 있으면 걷기나 뛰기를 할 거라고. 믿음은 좋다. 그 믿음에 상처를 아니 배신을 받거나 당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통의 배신은 적은 금액에서 오지 않는다. 12개월 할부라든지 최대 할인의 일시불이라든지의 지출로부터 온다. 12개월 할부금을 총 합하면 금액이 크다. 최대 할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시불로 지불하면 그 금액을 무시하지 못한다. 카드가 위험한 이유는 내 눈에 보이지 않고 통장에서 알아서 돈이 빠져나간다는 거다. 돈은 빠져나갈 거고, 물건은 이미 내 손에 들어왔다. 내 것이 되었다는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 모든 매력이 감소하고 만다. 사람이란 동물이 그렇게 창조된 걸지도 모르겠다. 난 신앙인이니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음에도 세상에 만연한 악과 어울려 살다 보니 사람이 변한 거라 믿으련다. 게을러지기 쉽고, 게으름에 익숙함을 너무나도 잘 느끼도록 진화가 된 거다. 점진적인 변화가 진화라면 이왕 진화되는 거, 좋은 쪽으로 발달하면 좋을 텐데.
그렇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쓰면 된다. 쉽다. 많이 쓰면 내가 무언가를 할 거라는 믿음에 따르는 거고, 배신을 당할 위험도 없다. 큰 금액의 지출도 저렴하게 되는 거고, 만족감과 건강이라는 효과도 덤으로 따라온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으니 그게 문제다. 제일 좋은 방법은 눈에 보이도록 해 놓는 거다. 눈에 잘 보여야 시도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린다. 눈에 보이게 하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한다. 목표를 정해놓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는 게 좋겠다. 목표는 길게 힘들게 잡지 말고, 하루 10분 – 15분이 적당하다. 자전거 타기, 걷기, 달리기, 마사지하기, 책상에 앉아서 일기 쓰기, 의자에서 책 읽기, 짐볼을 이용해서 스트레칭하기 등등. 10분 - 15분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중요하다. 30분이 넘어가면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기 때문에 꾸준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일단 해보기, 지금 시작하기도 중요하다. 내일부터 해야지가 제일 무서운 말이다. 내일이란 나에게 오지 않는 시간일 수도 있고 내일의 나에게는 또 다른 내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일을 찾다가는 일 년이 훌쩍 지나가 있을 것이고, 나의 할부가 끝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기억 속 저편으로 넘기고 추억의 일부로 삼아, 어쩌면 내가 생각보다 그래도 열심히 사용했지, 저렴하게 구매했으니 본전은 뽑은 거야, 라며 자기 위안과 합리화로 중무장을 하고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거나 어디 한 구석으로 치워버릴지도 모른다. 안녕.
이렇게 잊히고 사려져 간 세상의 수많은 물건이여, 미안하다. 사람들이 이렇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과 지내는 이들은 행복할지어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10분 - 15분을 하자. 그리고 내일도 또 똑같이 눈에 보이는 즉시 바로 하자.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나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라도 졸음이 가득 찰 때 해야 할 게 생각이 나곤 해서 10분도 채 하지 않을 때도 많다.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해야 할걸 하는 거다. 나는 집에 들어오면 외부와의 차단을 선언하고 무조건 샤워를 먼저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씻기 전에는 침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침대는 소중하니까 외부의 먼지가 한 톨이라도 침범하게 만들면 안 된다. 너무 힘들 때는 차라리 바닥에 잠시 누워 있는다. 먼지를 털어야지만 쉴 수 있는 타입이라, 샤워를 하고 나면 몸이 늘어지기도 하고 쉬고 싶어지기도 해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샤워하기 전에 하는 편이다. 그렇게 하면 잊지 않고 꾸준히 하게 되더라.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다. 다만 선물을 받은 물건이나,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구입한 물건이나 상관없이 물건이라면 그 쓸모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게 우리 손에 들어왔으니 방치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게 결국에는 모든 걸 아끼는 최소한의 태도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