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80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싫어하지 않는 편이라는 게 더 가까운 표현이다.
사실 무관심의 일종인데 이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는 친구가 같이 봉사를 한 적이 있는 어떤 오빠가 너무 싫다고 했다. 나는 그 오빠의 장단에 대해서만 말을 했는데, 그 단점이 친구의 싫은 이유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친구는 그 오빠가 여성에게 찝쩍거리는 말을 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고 내가 별로 그와 말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또 나와는 그냥 지인 사이이고 내가 그에게 여자로 보이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내가 너무 생각이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렇게 눈에 띄게 모든 여자에게 들이대는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냐고. 아, 나는 정말 생각이 없고 개념이 없는 사람인가. 여자에게 들이대는 남자에게도 싫다는 감정이 들지 않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속으로는 발끈했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척을 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곰곰이 계속해서 약간은 집요하게 생각했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그 오빠가 나한테는 정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은 건지에 대해서. 여러 번 상황을 더듬어 나갔다. 몇 주 전에는 건물 앞에서 마주쳐서 인사를 했고,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다. 내가 몸이 약한 걸 알고 있기에 오빠는 건강 조심하라며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아니, 두드린 게 아니고 쥐었다가 편 건가. 잘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전에는 몇 번 정도 생일 축하한다고 카톡을 주고받았다. 생일 축하 메시지와 그다음 생일 축하 메시지 사이에는 특별한 대화가 오 가지 않았다. 생일 축하도 이모지와 스티커 몇 개로 주고받았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또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방으로 회사를 다니게 되어서 서울에는 자주 못 오게 되었다고, 주말마다 오는 게 힘들어서 한 달에 한두 번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해서 고생이 많네, 건강 잘 챙겨, 이런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 또한 지나가다가 만났을 때의 일이다. 흠, 따로 만난 적도 없고, 둘만 밥을 먹은 적도 없다. 대학생 때부터 오가다 마주쳤으니 알게 된 지는 오래되었고, 다른 여자애들에게 잘해 주는 것처럼 나한테도 잘해 주었을 뿐, 그뿐이라는 생각이다. 난 술자리에 거의 가지 않으니 취한 모습을 볼 일도 별로 없었다. 물론 취한 모습을 간혹 보기도 했고 여자애들에게 와는 다르게 남자애들에게는 거칠게 대하는 걸 본 적도 있다. 그런 모습은 나도 싫어하고 별로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라 위에 말한 단점에 그게 들어간다.
자, 다시 나의 성향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 존재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좋아하는 편, 아니 대체적으로 싫어하지 않는 쪽이 더 맞는 말이고, 이건 일종의 무관심.
관심이 없으면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한다 해도 나의 눈과 몸과 맘 어디에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에 싫어하면 상대의 작은 행동에도 눈살이 찌푸려지고 몸에 소름이 돋고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관심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거나 혹은 그런 마음이나 주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마음이 끌린다는 건 보통 좋은 쪽으로의 끌림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관심이 있다, 관심을 기울이다, 관심이 쏠리다, 관심을 모으다, 관심을 돌리다, 등의 문장을 보면 수긍이 가면서 대상에 궁금증이 인다. 그런데 그 대상이 만약에 여자라면? 그리고 심지어 주어가 남자라면? ‘그는. 여자에. 관심이. 많다.’
관심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관계할 관(關) 자에 마음 심(心) 자를 쓰는데, 그렇다면 관계에 의한 마음, 관계를 이루는 마음, 관계를 통한 마음이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적절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이면 긍정적이고 좋은 쪽일 테고, 적절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라면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쪽일 테니 너무 상반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친구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비난받거나 오해받을 행동을 했던가. 아니면 내가 정말로 타인의 행동을 잘못 알아차린 게 있었던가. 타인을 탓하기 앞서 나를 돌아본다.
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떤 관계로 엮여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무관심했고 관심이 없어서 싫어하지도 않아 버린,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나 보다. 그런 일을 내가 타인에게 행하고 있나 보다. 어쩌면 관계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나 같은 사람은 도움도 안 되고 혼란만 주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사회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고 있고, 어느 정도는 더 살아갈 것 같고, 이 성향이 크게 변화될 것 같지는 않으니,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여, 나를 잘 보아주기를, 너무 쓸모에 의해서만 판단하지 말아 주기를, 화내지 말고 보듬어 주기를, 간절히 요청해 보는 바이다. 그리고 내 주위의 수많은 지인들이여, 내 무관심에 상처받지 않기를, 나는 당신을 크게 의심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는 편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