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100
가끔 엄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을 집에 가져온다. 주로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나 다양한 김치류를 새로 만들었을 때 엄마가 조금 가지고 가겠냐고 여쭤보신다. 엄마 반찬이 내 작은 냉장고 안에 들어 있으면 밥이 먹고 싶어진다. 평소에는 거의 밥이라는 걸 집에서 제대로 먹지 않기도 하고 주로 면을 간단히 먹는 편이라 반찬이 별로 필요치 않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반찬이 눈에 들어오면 밥이,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 먹고 싶어지는 거다. 정작 제대로 차려 먹지는 않고 밥과 반찬, 죽과 반찬, 혹은 칼국수와 반찬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부모님과 살 때는 요리는 해본 적도 없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집에서는 밥을 잘 먹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냉장고도 아주 작은 걸로 마련하고, 전기밥솥 대신에 밥을 만들거나 계란찜 등을 해 먹을 수 있는 작은 포트 하나와 면, 냉동 만두 등을 위한 라면 포트 하나, 이렇게 두 개를 준비했다. 두 개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밥을 만들어 먹어도, 면을 끓여 먹어도, 만두를 쪄먹거나 달걀을 삶아 먹어도 한 끼에 한 종류만 먹어 포트도 하나씩만 사용하고 있다. 뭔가를 만들어 먹으려고 해도 포트를 둘 다 꺼내 놓을 공간이 부족하고, 하나만 올려놓아도 꽉 찬다. 가끔 요리에 대한 열정이 타올라 파스타를 만들어 먹거나 (물론 파스타 면을 삶고 소스를 끓여 부어서 먹는 정도이지만) 달걀 토스트를 며칠 동안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미니 오븐도 하나 있다. 평범하고 길쭉한 식빵 한 조각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아담하다) 그건 몇 달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작년 생일에는 생계를 보조하기 위한 선물을 몇몇 지인에게 받았는데, 그중에 컵밥이라는 게 있었다. 면이 아닌 밥이 먹고 싶은데 반찬이 없을 때 (물론 나는 아무 반찬 없이 맨밥만 먹는 것도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유용했다. 한 끼로 하기에 넘치게 든든했고 컵밥 종류가 다양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내 돈을 주고 사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어서 다 먹고 나서 그 뒤로는 스스로 사 먹지는 않고 있다.
사실, 나는 먹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치곤 제대로 신경 써서 차려 먹지는 않는데 먹을 기회가 생기면 열과 성을 다해 맛있게 먹기 때문에 먹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많이 씹는다. 그래야 더 맛있기도 하고 덜 씹으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아 잘게 될 때까지 씹는다. 그러니 먹는 속도가 느려서 하루 종일도 먹을 수 있다. 남들 다 먹을 때까지 나는 계속 먹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기보다 많이 먹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한다. 먹는 총량은 평범히 먹는 사람들에 비해서 약간 많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정작 주식인 밥보다는 반찬을 더 많이 먹는 타입이다. 국물보다는 건더기를 더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국물까지 다 먹는다. 그래서 살이 조금 붙은 것 같기도 하고.
음식을 함께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이런 걸 표현하는 용어가 있는데, ‘식사의 사회적 촉진 효과’이다. 이는 식사를 할 때 다른 사람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에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아는 사람과 함께 할 때를 의미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예일대의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YTN 사이언스 참고)
내 경우를 보면 더 맛있고 덜 맛있고는 ‘함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타인과 함께 식사하는 모든 순간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듯하다. 가끔 외롭다거나 누군가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혼자서 먹어도 맛있는 건 변함없이 맛있다. 혼자 있음이 익숙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엄마는 당뇨병을 앓고 계셔서 저녁을 간단히 먹거나 드시지 않는 편이다. 매일 아침에 공복 혈당을 확인하는데, 전날에 저녁 식사를 한 날이면 수치가 높게 나온다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 밥을 먹을 때 엄마는 식탁에 앉아 있고, 나 혼자서만 식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엄마의 표정은 식사와는 상관이 없고 핸드폰을 하고 계시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엄마 밥을 먹을 때는 엄마가 앞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반찬에 대해서 자주 물어본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이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어떻게 재료를 골라야 하는지 등등.
가까운 날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 먼 훗날, 엄마와 살을 마주치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되면, 나는 엄마의 반찬을 그리워하게 될까. 물론 그리워할 거다. 엄마 밥과 엄마가 차려주는 식사, 혹은 만들어 주는 반찬이 그리울 거다. 하지만 그 음식만이 그리움의 대상은 아니리라. 엄마가 그리운 걸 테니까. 그런 상상을 하면 훗날이 오지 않았으면 싶고, 온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을 길지 않게 보냈으면 싶다. 나도 빨리 떠나고 싶다는 말이다.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지는 않다. 삶에 큰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와 가족이 있는 지금을 잘 보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또 잘되지는 않는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일 텐데 이상하게도 그게 쉽지가 않네. 자꾸 다짐하고 계속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다.
내가 반찬을 만들어 먹는 날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엄마도 젊었을 때는, 결혼하기 전에는, 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었는데.
엄마가 만들어 주는 건 대부분이 다 맛있지만 유독 궁금한 것이 있다. 여태 먹었는데 새로운 음식이 있는 게 아닌데도 조금씩 관심이 생기고,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엄마가 설명을 해주면 나는 유심히 듣고, 또 바로 잊어버린다. 기록을 남겨야지 하면서 며칠을 미루고, 마침내 잊고야 마는 거다. 그러면 나는 다시 엄마에게 물어보게 되겠지. 그 질문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몇몇은 기록을 남겨놓았다. 사진과 만드는 방법, 엄마가 얘기해 준 걸 비공개로 올려놓았다. 그런 게 쌓이고 쌓이면 그리움이 될 것만 같아 벌써부터 슬프다.
언젠가 반찬을 만들어서 엄마한테 맛을 보여 주어야지, 이런 생각을 지금에서야, 처음 한다. 미역국을 만든 적이 있는데 반찬을 만들어 본 적은 없다. 나의 첫 번째 반찬은 과연 언제 어떤 반찬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