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라라 소소

'배 째'의 마음

- 라라 소소 101

by Chiara 라라

막상 이력서를 쓰려고 하니 막막했다. 너무 오래전에 써 놓은 이력서를 열어 보면서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요즘에는 또 다르게 써야 하는 건 아닌지 망설여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건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추가될 만한 이력 사항이 크게 없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해본 적이 없는 분야다.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는데 다른 경험을 굳이 해야 할까, 하는 고민과 함께 피하려고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새로운 순우리말을 알게 되었다. 은결들다.

‘은결들다’는 ‘상처가 내부에 생기다’, ‘원통한 일로 남모르게 속이 상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속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 나는 은결드는 일이 많다.




새로운 거에 호기심이 많고 관심이 생기면 해보고 싶어 한다. 나의 이런 면은 타인에게 어쩌면 적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고 외향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향적이지만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과거형. 지금은 잘 모르겠다. 호기심이 생겨도 의욕이 없다고 해야 하나. 겁이 많아졌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넌 정말 내향적이고 드러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낯선 곳에서는 길 물어보는 데 주저가 없더라. 불안하지 않니?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난 낯선 곳에서는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조차도 어렵던데.’


낯선 곳이니까 가능하다. 낯선 사람이니까 가능하다. 아는 곳이면 그렇게 못한다. 아는 사람이면 그렇게 다가가지 못한다. 누구나 다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게 아닌가 보다.




익숙해짐은 두려움을 낳는다.

새로움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유도한다.


나는 그렇고 당신과 나는 다를 수 있다. 잊지 말기. 기억하기.




경력을 만들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려면 이력서를 써야 한다.


영어를 매일 하지만 시험을 본 지는 오래됐다. 시험을 봐야겠다. 영어 시험 준비를 하면 재미있을 게 분명하다.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하루 종일 읽고 쓰는 게 제일 좋고, 그다음에는 공부만 하라고 해도 즐길 자신이 있다. 혼자 있어도 시간이 쑥쑥 지나가는 마법. 마법만으로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절망.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니, 사실 돈을 좀 더 벌어야 한다.


별반 특이할 거 없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그래도 사진은 바꾼, 이력서를 제출했다. 아르바이트에서 이력서를 원하는 곳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이 구글이나 네이버 설문 폼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되는 대로 작성 중이다.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배 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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