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102
일상을 살아가면서 침묵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와의 만남은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순간순간 이루어지고 만남은 곧 짧거나 긴 대화로 이어진다. 업무상의 대화가 있을 수 있고 식구들과의 대화가 있을 수 있으며 지인과의 대화나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도 있을 수 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에너지를 얻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렇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곧 침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침묵(沈默)’이라는 단어는 잠길 ‘침(沈)’ 자에 잠잠할 ‘묵(黙)’ 자로 이루어진다. 잠잠하게 잠겨 있는 상태,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거나 그런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물론 어떤 일에 대하여 그 내용을 밝히지 아니하거나 비밀을 지킴, 또는 그런 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다. 나는 전자를 말하고 있다.
말을 많이 하고 나서 혼자가 되었을 때 나의 언행을 돌아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한 건 아닌지, 필요한 말을 한 게 맞을지, 쓸데없는 말을 한 건 아닌지, 상대의 말에 귀를 덜 기울인 건 아닌지. 무엇보다도 내가 상대를 대하면서 긴장을 많이 했다는 게 티가 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나는 타고난 연기자이고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걸 대화 중에 잘 들키지 않으니까. 대화를 어느 정도는 잘 이끄는 사람이니까. 그러고 나면 몸살을 앓는다.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사회적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 행복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게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Diener&Biswas-Diener, 2008)고 한다. 보통은 싫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타인과의 어울림을 즐기지 않는데 소소하고 작은 모임에서의 혹은 상대와 나만의 만남에서는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
피정에 다녀왔다. 피정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표현인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속세를 떠나 보통은 수도원이나 피정의 집에서 기도, 강의, 묵상, 미사를 통해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걸 일컫는다. 이를 '진정한 쉼'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피정의 종류가 있다. 나는 대침묵 피정을 하고 왔다. 침묵은 피정 동안 되도록 말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고, 대침묵은 그것보다 더 강도가 높게 침묵을 유지하는 것으로 피치 못한 상황에서는 메모를 이용하여 의사를 전달한다.
대침묵을 하면 피정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동할 때는 시선을 약간 아래로 하고 움직인다. 식사 시간에도 식사에 집중하거나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한다. 대침묵이 좋은 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행동에, 생각에, 집중이 잘 된다는 점이다.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야 옳은 말이겠다. 물론 말을 너무 하고 싶어서 분심이 든다는 사람도 많이 봤는데, 조금 익숙해지면 또 그 시간을 조금 견디어 내면 집중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공기가 좋고 풍경이 아름다운 수도원 안에 있는 피정의 집이었다. 시간도 봉헌했기에 (피정 동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제출하는 걸 말한다) 얽매일 게 없었다. 새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하늘의 맑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환한 빛이 잔디밭에 내려왔다. 평소보다 밥을 더 천천히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책도 읽고 생각의 거리도 끄적였다. 강의를 들을 때는 신부님에게 더 집중했다. 기도 시간에도 짧은 기도문에, 성경 말씀에, 충분히 머물렀다.
평소에 침묵을 좋아하지만, 대침묵을 유지하는 건 나 혼자서 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야만 가능하다. 가끔은 대침묵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주변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눈으로 살며시 시선을 마주하면 좋겠다. 아무것도 없는 게 대침묵이 아니고 나와 바로 그것만이 있는 상태가 대침묵의 상태다. 오로지 온전히 느끼고 생각하고 나아가는 길.
함께 피정을 받은 외향적인 성향의 한 언니는 피정을 마치고 말이 너무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 걸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은 좋았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집에 오는 기나긴 길에 언니는 끊임없이 말을 했다. 그 시간 동안 언니가 느낀 것, 생각한 것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대침묵 후 많은 단어들이 들어오는 게 아득하고 어지러웠지만 이제 세상으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프고 다소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벌써부터 그 시간이 그립다.